왕따 혜린이에 남은 건 휴대폰 하나…20시간 '이것'만[출구 없는 161분]①
세상 피해 숨은 아이도, '인싸' 친구도 SNS 통해 '연결'되는데
"카톡은 어른들 세계, 인스타는 우리들 세계"…'차단'이 답일까
- 김예원 기자, 이기범 기자, 정윤미 기자,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이기범 정윤미 김종훈 기자 = "끝나서 슬프다. 이제 뭐 보냐."
서울에 사는 16살 혜린이(가명)의 중얼거림은 24시간 뒤면 사라진다. 게시한 지 하루가 지나면 자동 삭제되는 '스토리'(인스타그램 콘텐츠의 일종)로만 속내를 털어놓기 때문이다. 드라마 종방이 못내 아쉬운 혜린이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자정을 훌쩍 넘긴 야심한 시간이었다.
수험생인 언니와 맞벌이 중인 부모님은 잠든 지 오래다. 어두컴컴한 방. 망설임 끝에 푸른 직사각형의 '공유' 버튼을 누른 혜린이가 고요한 화면을 응시했다.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힘겨운 혜린이에게 SNS는 삶을 공유하는 유일한 창구다. 내 '스토리'를 보고 누가 말이라도 걸어줄까. 게시글이 올라간 후에도 혜린이는 여전히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혜린이가 SNS에 빠진 건 2년 전이다. 평소 하루 18시간 정도. 많게는 20시간까지 SNS를 한다. 중학교 진학 후 댄스부에 가입한 혜린이에게 이유 모를 괴롭힘이 찾아온 게 계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친한 친구와 틀어지는 일도 생겼다.
"한 번 배신 당하니 아무도 못 믿겠더라고요. 누군가랑 함께 있는 게 힘들고, 눈도 못 보겠고."
또박또박하던 혜린이의 목소리는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흐려졌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주위의 놀림과 손가락질을 받을 때마다 밝은 척, 당당한 척 굴었지만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다른 댄스부 친구들처럼 늘씬해지면 인기가 많아지고 괴롭힘이 줄어들까. 트위터와 또래 친구로부터 다이어트약을 몰래 구해 2, 3개월 먹기도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쓰러지는 걸 엄마한테 들키고 관뒀다. 정신을 차린 혜린이 곁에 남은 건 단 하나. 휴대전화뿐이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년 가까이 같은 반 친구들을 비대면으로 만났던 혜린이다. 한 뼘 남짓한 휴대전화 속 SNS 세상은 오히려 익숙했다. 홀로 남은 혜린이에게 SNS는 근처 지역에 살거나 취미가 같은 친구들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관심을 받고 싶었던 혜린이는 틈날 때마다 친구들에게 '팔로우' 요청을 걸었다. 그렇게 곁에 모인 친구들은 많을 땐 150명을 훌쩍 넘길 때도 있었다.
SNS가 추천한 건 친구만이 아니었다. 앱 버튼을 누르면 춤추는 아이돌들과 요약된 드라마 영상이 몇 분 간격으로 쏟아졌다. 배우와 아이돌을 보다 보면 이들의 화장법, 머리 모양을 따라 하는 영상들도 줄줄이 나왔다. "하루에 몇천 개씩 봤죠. 한 번 보면 연달아 서너 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SNS를 보다 보면 날은 금방 샜다. 밤늦게까지 쇼츠를 보다 다음날 학교에서 엎드려 자는 날이 늘었다. 이동할 때도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오토바이와 부딪혀 다리 깁스를 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세상이 어두컴컴해요."
부산에 사는 중1 지환이(가명)에게 카카오톡은 '어른들의 세계'다. 번호도 알아야 하고, 아이디도 알아야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우리들의 세계'는 인스타그램이다. 방과 후 자전거를 타자고 친구에게 연락하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을 땐 인스타그램만 한 게 없다. 릴스를 넘기다 보이는 '챌린지'를 친구들과 따라 한 후 인스타그램에 올려 주위 반응을 살피는 것도 재미다.
"서로 올린 피드 보고 마음에 들면 DM 하죠."
지환이에게 피드는 일종의 '자기소개'다. 지환이가 노래방에서 노는 모습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같이 놀고 싶은 또래가 친하게 지내자고 DM을 보내는 식이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 한 때 자전거 난폭 운전으로 논란이 됐던 '따폭연(따릉이 폭주 연맹)' 참가자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위험해 보여 실제로 참여하진 않았다.
부산 지역뿐만 아니라 인천 등 수도권까지 지환이의 친구들은 전국구다.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알람이 오는 게 일상이다. 지환이 말로는 30분 정도 핸드폰을 보지 않으면 20개 정도의 DM이 쌓인다고 했다. 700명 정도의 '맞팔' 친구들이 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120명 정도로 '정리'했음에도 연락이 꾸준하다.
지환이의 하루 평균 SNS 이용 시간은 평일엔 4시간, 주말엔 8시간 정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스마트폰이 생겼을 땐 하루 최대 20시간까지도 해 봤다고 한다.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하긴 하지만, 안 가져왔다고 둘러댄 뒤 몰래 친구들과 '릴스'(인스타그램의 짧은 영상 콘텐츠) 챌린지를 찍고 노는 게 일상이다.
보다 못한 부모님이 휴대전화 잠금 앱도 설치했지만 이를 뚫는 건 어렵지 않았다. 휴대 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던 지환이는 "사람 돼서 돌아오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10월 초부터 2주간 '청소년 인터넷 스마트폰 치유캠프'에 참여 중이다.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오전 7시 30분이면 기상하는 캠프 생활. SNS를 보느라 새벽 1~2시에 자고 밀린 잠은 학교에서 보충하던 게 몇 주 전이다. 지환이는 그때와 비교하면 키는 클 것 같아 좋다면서도, 캠프 직전 제출한 자신의 스마트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낯빛이 어두워졌다.
"폰 낼 때 기분이 안 좋았어요. 지금도 외딴곳에 갇힌 느낌이에요." 인상을 찌푸리던 지환이는 그 순간에도 '쇼츠'를 넘기듯 손가락을 좌우로 꼼지락거렸다.
혜린이, 지환이와 같은 아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2023년 발표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10명 중 4명(40.1%)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
10~19세 청소년 4명 중 1명(36.7%)은 온라인 짧은 영상 콘텐츠 시청 시간 조절의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엔 SNS 등 스마트폰 사용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고, 이를 자율적으로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질병적 접근의 차원에서 '중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최근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춘 '과의존' 명칭을 병기한다.
SNS 중독(과의존)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조절력'을 기르는 게 핵심이다. 지자체 청소년 센터와 여성가족부 산하의 '국립 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에서 스마트폰 없는 2~4주 합숙 캠프를 진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심용출 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기획운영부장은 "또래와 직접 만나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하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늦봄, 합숙 캠프를 갔다 온 후 5개월간 하루 3~4시간만 SNS를 보는 생활을 실천 중인 혜린이에게도 그렇다. 휴대전화로 손이 갈 때마다 혜린이는 '코노'(동전 노래방)로 간다. 캠프에서 농구 등 체육활동을 하면 금세 곯아떨어졌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힘들면 SNS 못하잖아요. 초반엔 한 달에 10번 넘게 가서 22곡까지 불러본 적도 있어요."
일부는 중독을 이기려 캠프에 재입소하기도 한다. 국내 유일의 인터넷 중독 청소년 상설 캠프 기관인 인터넷 마을에선 2020년부터 재입소 캠프를 별도 운영 중이다. 재입소 문의 등 수요가 많을 때만 최대 연 2회씩 진행하는데, 시범운영을 시작한 첫 연도를 제외하곤 지난 3년간 정원을 꽉 채워 열렸다. SNS에 맞서는 아이들의 사투는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kimye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2023년 기준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161분. 심할 경우 휴대전화 화면에 펼쳐진 '한 뼘 세상' SNS에 하루 20시간 매달린다. 정치권 논의대로 청소년들의 SNS 접속을 차단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뉴스1은 약 두 달간 전국 초등학교·고등학교·치유 캠프에서 청소년·인플루언서 등 총 95명을 만나 SNS 과의존 실태와 해법을 추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