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파이(π)데이죠, 사탕 대신 밥"…달라진 MZ세대 화이트데이
'실용성' 따져 원하는 선물 주고받아…코로나 이후 기념일 문화 '퇴색'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화이트데이 특수는 옛말이죠."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2)는 지난해보다 화이트데이 기획 상품(사탕, 초콜릿, 젤리 등)을 절반 가량 적게 들여놨다. 코로나19 발생 후 모임 등이 줄어들면서 관련 상품이 매출이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14일 "코로나19 전까지는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때마다 별도 매대를 만들고 풍선을 붙여서 관리를 했는데, 2~3년 전부터는 더이상 진행하지 않는다"며 "코로나로 외부에서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이 줄어들었고, 기념일을 챙기는 문화도 점점 없어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주류는 평소보다 30% 더 들여뒀다고 귀띔했다. '기념일'이라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고 집이나 숙박업소 등에서 만남을 갖는 연인, 친구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이들이 늘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 기념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기존에는 초콜릿이나 사탕, 빼빼로 등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념일' 자체의 본래 의미보다는 실용성있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날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대학생 김준영씨(22)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화이트데이 전날에는 친한 여자친구들에게 줄 사탕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동기, 선후배들과 깊게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기념일 날 친구와 선후배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특성이 기념일에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원생 정모씨(27)는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몇천원 하던 사탕, 초콜릿 세트도 몇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거의 밥값 수준"이라며 "차라리 그 돈으로 더 좋은 식당을 예약해서 여자친구와 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서모씨(31·여)도 "예전에는 초콜릿, 빼빼로 등 먹을 것과 편지를 주는 것이 유행이었다면, 요즘에는 실용성 있는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자리잡은 것 같다"며 "밸런타인데이 때도 초콜릿 대신에 남자친구가 가지고 싶어하는 지갑을 선물로 줬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김선아씨(31·여)도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한다"며 "물가도 오르고, 취업도 어려워지면서 기념일마다 친한 친구들 모두에게 다 주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돼 버렸다. 친구 몇 명에게만 사탕을 주기도 곤란해서, 아무에게도 안 주다보니 기념일을 점점 안 챙기게 됐다"고 털어놨다.
화이트데이를 둘러싼 의견들은 온라인상에서도 많았다.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화이트데이처럼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날들을 기념하기보다는 3·1절 등 국가적인 기념일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커플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오늘은 '파이데이'(원주율을 기념하기 위한 날)에 불과하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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