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잊은 日, 상처만 남은 사도광산 추도식…한일관계 '빨간불'
정부, 추도식 하루 전 불참 결정…야스쿠니 참배 이력 日대표 등 영향
전문가 "수교 60주년 기념 신뢰 바탕 돼야 하는데…동력 있는지 의문"
- 노민호 기자, 정윤영 기자
(서울·사도시=뉴스1) 노민호 정윤영 기자 = 정부가 일본 측과의 이견으로 '사도광산 추도식'에 전격 불참을 결정하면서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둔 한일 관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당초 24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 위치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개최될 추도식에 유가족 등과 함께 박철희 주일대사를 정부대표로 참석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추도식 개최가 임박했음에도 한일 외교당국은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특히 일본측이 내세운 정부대표의 '부적격' 논란이 일었다.
일본 정부 측 인사로 참석하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지난 2022년 8월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바 있다.
정부는 그간 일본 측에 정무관급 인사를 참석시킬 것을 요구해 왔던 만큼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은 우리 입장이 반영된 결과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변수'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외교가에선 정부가 일본 참석 인사의 '급'에만 신경 쓰고 과거 이력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 정부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추도식에서 가장 중요한 한일 정부 대표 인사가 각각 발표할 '추도사' 내용 조율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추도식 참석을 위해 이날 오전 일본으로 향한 9명의 유가족과 함께 별도의 독립적인 추도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유가족은 사도광산 및 관련 시설 방문 일정도 소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매년 열기로 우리 측에 약속한 조치다.
일본은 당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설치도 약속했고, 등재 결정이 나기 전 '선(先)조치'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내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시물에 '강제 연행', '강제동원' 등의 표현이 빠졌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이번 추도식의 추도사에서 마저 '강제'라는 표현 또는 '조선인 노동자'를 지칭하는 내용이 없다면, 사실상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기념 잔치'에 한국이 들러리로 나서는 모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유가족을 '우롱'하는 추도식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한일관계 개선에 힘을 실어 왔다. 국내 여론 악화를 감내하면서도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하며 한일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탔다.
그렇지만 정부는 당시 '물컵의 절반이 찼다'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물컵의 나머지 반이 채워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일본의 호응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추도식을 비롯해 이같은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결국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양측이 준비 중인 여러 기념 사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일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도 이젠 일측의 호응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 센터장은 "내년 수교 60주년을 맞아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등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러한 성과를 내려면 한쪽만 해선 안 된다"라며 "또 양측이 상당한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그러한 동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 한일 양국이 60주년을 앞두고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하나의 단일적인 문제가 전반적인 양국관계 흐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라며 "일본 외교당국과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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