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게임 제치고, BTS 음원 밀어내고…'미소녀 게임'의 반란

더이상 '비주류' 아니다…게임업계 미소녀게임 '눈독'
6개중 4개가 '중국산' 게임…"선정성 말고 게임성으로 경쟁해야"

전략 육성 RPG 게임 '파이널기어' (파이널기어 공식 홈페이지 캡처) ⓒ 뉴스1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美)소녀 게임'의 열기가 심상치 않다. 엔씨소프트의 신작 '트릭스터M'을 밀어내고 구글 플레이 매출 3위에 오르는가 하면, 미소녀 게임이 출시한 OST가 음원 차트에서 'BTS'(방탄소년단)를 밀어내고 실시간 차트를 석권하기도 했다.

'흥행 보증 수표'로 등극한 미소녀 게임들의 약진에 넥슨·카카오게임즈 등 굵직한 게임사들까지 동종 장르의 신작 출시를 예고한 상황. 다만 '중국산' 미소녀 게임이 순위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 미소녀 게임의 고질병인 '선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은 국내 게임사들이 풀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 '서브컬처' 미소녀 게임, 구글 매출 3위…음원 차트까지 돌풍

6일 모바일 게임 신작 '파이널기어'가 엔씨소프트의 신작 '트릭스터M'을 밀어내고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3위에 올랐다. 파이널기어는 중국 게임사 빌리빌리가 출시한 전략 육성 MMORPG다. 주목할 점은 파이널 기어가 게임 장르 중 서브컬처(하위문화)라 불리는 '미소녀 게임'이라는 것이다. 파이널 기어는 "아름다운 소녀 파일럿들과 강력한 메카가 함께하는 미소녀X메카 RPG(역할수행게임)"라고 게임을 소개한다.

미소녀 게임은 만화풍의 소녀 캐릭터를 게임 내 주요 콘텐츠로 등장시키는 장르를 말한다. 이용자가 미소녀 캐릭터를 '육성'하거나 '수집'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간 한국에서 미소녀 게임은 일본의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문화로 분류되며 일부 이용자만 선호하는 '비주류 장르'로 꼽혀왔다. 다만 최근엔 단순 캐릭터 수집·육성에서 벗어나 액션, 레이싱, 격투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며 대중성까지 잡고 있다.

지난 1일엔 미소녀 2D 전략게임 '라스트오리진'의 OST가 국내 음원 사이트 1~6위를 차지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라스트오리진를 서비스하는 스마트조이는 게임 이벤트의 일환으로 OST 앨범을 국내 음원 사이트 '벅스'에 출시했다. 그런데 출시 직후 앨범 내 6곡이 한번에 실시간 차트 1~6위를 석권했다. 앨범 타이틀 곡인 'With You'가 1위를 차지했으며 △두근☆두근 반짝★반짝 △그대는 나에게 △LoverLover △빛나는 별의 노래 등이 뒤를 이었다. 이 때문에 기존 1위였던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Butter'는 7위로 내려앉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1일 모바일 수집형 RPG '라스트오리진'의 OST 6곡이 '벅스'의 음원 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라스트오리진 공식 카페 캡처) ⓒ 뉴스1

◇ 더이상 '비주류' 아니다…게임사 미소녀게임 '눈독'

사실 국내 게임사들은 미소녀 게임의 잠재력을 수년 전부터 주시해왔다. 미소녀 게임이 보여주는 '매출 지속력' 때문이다. 미소녀 게임 대부분은 남성 이용자가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수집하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미묘한 '연애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때문에 이용자들은 타 장르와 달리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꾸준히, 오랫동안 '과금'하는 특징이 있다.

실제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순위엔 다수의 미소녀 게임들이 TOP50 이내를 차지하고 있다. 파이널기어(3위), 원신(17위), 페이트 그랜드 오더(22위), 에픽세븐(25위), 붕괴3rd(28위), 소녀X헌터(34위) 등이 그 예다. 심지어 '페이트그랜드오더'와 '붕괴3rd'는 2017년, '에픽세븐'은 2018년에 출시해 이미 3~4년이 지난 게임들이다.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탄탄한 팬층을 기반으로 중위권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소녀 게임이 보장하는 꾸준한 성과에 게임 퍼블리셔(배급사) 사이에선 '없어서 못 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3월 일본 사이게임즈의 신작 모바일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와 국내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우마무스메는 경주마의 능력을 가진 미소녀 캐릭터를 육성해 '레이싱'을 펼치는 게임이다.

또 넥슨은 지난 5월 넥슨은 자회사 넷게임즈가 개발한 '블루 아카이브'의 국내외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미소녀 학생들을 이용해 학원과 동아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 '전투'를 펼치는 게임이다.

◇ 6개중 4개는 '중국산' 게임…"선정성 말고 게임성으로 경쟁해야"

'서브컬처'로 치부되던 미소녀게임들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미소녀 게임이 순위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50위 내에 진입한 미소녀 게임 6개 중 4개가 중국산 게임이다. 파이널기어·원신·붕괴3rd·소녀X헌터 등이 그 예다. 또 지난 4월 중국의 대표 게임사인 텐센트 게임즈는 모바일게임 '백야극광'을 국내 출시를 확정하고 사전예약에 돌입했다. 백야극광은 80명 이상의 미소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모바일RPG다.

국내 게임사들도 미소녀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지난해 10월 국내 게임사 아이앤브이게임즈가 출시한 '아이들프린세스'는 선정성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아이들프린세스는 이용자가 아빠가 돼 여자아이를 성장시키는 내용의 역할수행 게임이다. 그러나 게임 속 여자아이가 선정적인 대사를 말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등의 문제로 구글 플레이스토어로부터 서비스 정지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미소녀 게임과 선정성 논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용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선'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면서 "미소녀 게임 열풍이 단순 신드롬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캐릭터 의존도를 줄이고 '게임성'을 높여야 한다. 중국 게임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다"고 설명했다.

ukge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