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보다 어렵다" 더 좁아진 취업문…'가성비' 중고신입 채용만 늘어
기업 40% "올해 신입 채용 없다"…중고신입 선호 58%→82% '쑥'
취업 한판 더 거세져…'경력 인정' 실무 교육 몰리는 취준생
- 최동현 기자
"솔직히 쉬웠어요. 면접이 끝나고 '붙었다' 확신이 왔죠."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 국내 한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A 씨는 올해 경력 4년 차 '중고신입'이다. 2022년 B사에 입사해 3년간 지방에서 일했던 그는 지난해 동종업계 C사 신입 공채에 지원해 합격, 근무지를 서울로 옮겼다. A 씨는 "면접에서 익숙한 실무 질문이 나와 술술 진행됐다"며 "면접관들도 흡족해하는 눈치라 합격했다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경력 있는 신입'을 뜻하는 중고신입의 몸값이 날로 뛰고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차별 관세, 국내 정치 불안 등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싼값에 실무능력이 검증된 경력직을 고용하려는 기조가 더 뚜렷해졌다. 반면 신입 취업 문은 3년래 가장 좁아졌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한 기업은 60.8%로 나타났다. 2022년 조사 이후 최저치다. 기업들의 신규 채용 계획 응답률은 2022년 72.0%였으나 이듬해인 2023년 69.8%로 낮아졌고, 올해는 9%포인트(p) 더 줄었다.
반면 중고신입 채용이 크게 늘고 있다. 경총 조사에서 신입 공채 때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본다는 응답은 무려 81.6%에 달했다. 이런 경향은 최근 3년(2023년 58.4%→2024년 74.6%→2025년 81.6%)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실제 한경협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졸 신규 입사자 4명 중 1명(25.7%)이 중고신입이었다.
중고신입 혹은 주니어 경력직 채용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유독 활발하다. 전 세계적으로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인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전문성을 가진 AI 인재는 태부족한 탓이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해 신입·경력 채용을 7차례 진행했는데 그중 경력 2~4년 차 경력을 뽑는 '주니어 탤런트'를 포함한 경력직 채용은 4번이었다. 수백 명 모집에 1000명 넘게 몰렸다고 한다. 삼성전자(005930)도 2023년부터 경력 채용 대상을 4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풀을 확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10년 차 경력을 뽑는 '퓨처 엘리트'를 지난해 신설했다.
중고신입이 각광받는 건 회사와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즉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신입 연봉에 고용할 수 있고, '평생직장' 개념이 없는 젊은 직장인들은 더 나은 처우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점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결국 실무 경험 없이 취업 시장에 발을 디딘 '순수 취준생'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진다.
업계는 취업 한파가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총 조사에 따르면 올해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하는 기업은 96.9%에 달했다.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전망도 22.8%로 높았다. 허리띠를 졸라맨 기업들이 신입 채용부터 줄이면서, 문과보다 상황이 나은 것으로 알려진 공대생 출신들도 취업에 애를 먹는 실정이다.
이에 취준생들은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채용 우대까지 받을 수 있는 각 기업의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에 몰리고 있다.
삼성은 1년간 매일 8시간씩 1600시간의 집중 교육을 통해 실무 역량을 갖춘 개발자를 육성하는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를 운영 중이다. 1~10기 수료생 8000명 중 6700명(84%)이 취업에 성공했다. SSAFY 수료생은 채용에서 우대하는 기업도 170여곳에 달한다.
LG(003550)는 청년 AI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LG 에이머스(Aimers)' 운영 중이다. LG 에이머스는 크게 AI 이론 교육과 해커톤으로 구성되는데, AI 해커톤은 타 프로그램과 달리 LG 계열사의 실제 현업 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어 인기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직무 경험 제공 프로그램 '청년 하이포(HY-Po)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실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도 있지만, 아직 AI나 반도체에 적합한 인재가 부족한 국내 현실도 반영된 것"이라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남들보다 더 우월한 성과를 내는, 이른바 '떡잎'이 보이는 인재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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