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복귀작 된 '종말의 바보'…이토록 '잔잔한' 디스토피아 [OTT 화제작]
26일 공개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 리뷰
- 윤효정 기자
*드라마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종말이 예정된 아비규환 속에서도 '바보'를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 12부작 드라마 '종말의 바보' 전편이 지난 26일 베일을 벗었다.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다.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종말의 바보'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드라마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 현실에 대한 신랄한 묘사와 섬세한 표현으로 많은 애청자를 보유한 정성주 작가가 '종말의 바보' 대본을 썼다. '인간수업'과 '마이네임'을 통해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김진민 감독이 화면에 담아낸 '종말의 바보'는 할리우드의 재난영화를 흉내 낸 그림이 아닌, 지금 우리들의 현실과 꼭 맞닿은 '한국형' 종말 예상도다.
'종말의 바보'는 서울 밖의 도시 웅천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종말'을 다룬 기존 영화와 드라마가 취하는 전형은 보이지 않는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지구로 날아오는 행성을 부수거나, 인류를 구할 영웅적 서사는 없다.
웅천의 주민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앞두고 각자의 방식대로 삶의 끝을 맞이한다. 패닉과 체념이 공존한다. 재빠르게 한반도를 탈출하는 가진 자들과 현대판 노아의 방주에 발을 들이고픈 이들의 욕망이 한 데 뒤섞이기도. 생존에 대한 강한 집착과 눌러왔던 분노를 폭발하며 인간성을 상실하는 이들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이들도 있다. 남은 날의 카운트다운이 계속 되는 불안 속에서 텃밭을 일구고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사람들, 마음 속 깊은 상처와 갈등을 끌어안으며 연대하는 이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지키는 교사 세경(안은진 분)의 이야기가 중심축에 있다. 정의로우면서도 따뜻한 심성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세경. 그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 윤상(유아인 분)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과학자인 윤상이 안전지대를 떠나 위험한 웅천으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서사가 더욱 강화된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신도들을 이끄는 신부 성재(전성우 분)와 강직한 군인 인아(김윤혜 분) 등은 종말을 앞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나서는 인물들이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계향(백지원 분)과 딸 인아와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애쓰는 엄마 명옥(차화연 분) 등 종말을 맞이하는 웅천시 주민들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악인들의 활약도 있다. 김진민 감독의 전작 '인간수업'에서 악인 콤비였던 임기홍 백주희가 이번에도 만나 또 한 번 이야기의 어두운 면을 맡았다.
'종말의 바보'가 보여준 새로운 디스토피아의 그림은 분명 차별화된 포인트다. 또 '밀회'에서 많은 시청자가 매료됐던, 정성주 작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밀도 높은 감정들이 보이는 신도 반가움을 자아낸다. 배우들의 열연도 '종말의 바보'의 장점이다. 안은진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내면을 가진 세경을 만나 깊은 감정연기를 펼치며 '연인'에 이어 또 한 번 시청자들의 믿음을 끌어올린다.
마약 논란의 유아인의 비중도 관심을 받은 포인트. 제작진은 많은 장면이 편집됐다고 했지만, 유아인이 맡은 윤상은 이야기의 흐름상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3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끝까지 활약한다. 유아인은 최근 작품에서 개성 강한 캐릭터와 장르를 거쳐온 것과 달리 이번에는 평범하고 우직한 인물을 연기했다. 전면에 나서는 인물이 아님에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두는 섬세한 연기력을 펼친 유아인이다.
여러 장점을 가진 '종말의 바보'이지만, 이 장점이 OTT 플랫폼을 보는 다수 시청자의 선호와는 맞을지는 미지수다. 초반부는 특히 더 루즈해 '다음 회 재생'을 누르기가 쉽지 않다. 확실한 사건과 개성 강한 인물이 없어 몰입할 대상이 눈에 띄지 않는 것. 이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많은 사연까지 풀어내다 보니 몰입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종말의 바보'가 던져줄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12부작의 대장정을 완주해야 하는 부담이 꽤 크다.
ich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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