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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답을 거부한다"…여성학자가 본 '#탈코르셋'

립스틱과 브라를 던진 여성과 마주한 사회
"왜 여성들이 옷을 벗었는지 배경을 살펴야"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8-06-09 08:00 송고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는 #탈코르셋 운동(트위터 갈무리)© News1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는 #탈코르셋 운동(트위터 갈무리)© News1

긴 머릿결과 갸름한 얼굴, 크고 또렷한 눈에 잘록한 허리까지. '미인'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움의 '조건'. 사회가 원하는 '예쁜 모습'이다.

여성들이 이 '미의 조건'을 깨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상의를 벗어 던진 반라의 여성들이 거리 위에 섰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립스틱을 부러뜨리고 '미의 조건'을 '코르셋'(corset·체형 보정 속옷)이라고 부르며 '자유'를 선언한 여성의 민낯과 마주하고 있다.

◇립스틱을 부러뜨리고 브라를 던진 여성들

페미니스트 모임 '불꽃페미액션'이 상의와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 섰던 지난 2일, 뷰티 유튜버 'Daily Room우뇌'는 길렀던 머리카락을 잘랐다.
1년여 동안 화장법 콘텐츠를 운영해 온 이 유튜버는 '탈코르셋을 하고 뷰티 유튜브를 내려놓으려고 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코르셋을 벗고 뷰티 유튜브 방송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2일 뷰티 유튜버 'Daily Room우뇌'가
2일 뷰티 유튜버 'Daily Room우뇌'가 "탈코르셋을 하고 뷰티 유튜브를 내려놓으려고 합니다"라며 방송 종료를 선언하고 있다(유튜브)© News1

탈코르셋 운동은 SNS에서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와 짧은 핫팬츠를 고수하던 한 여성은 편안한 티셔츠를 입고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자른 인증샷과 함께 '여리 섹시 버리고 사람 됨'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공유했다.

다른 여성은 립스틱과 파운데이션을 부러뜨린 사진과 함께 '내 얼굴을 부정했다는 걸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적었다.

역시 화장품을 하나하나 부러뜨린 '탈 코르셋 인증샷'을 찍은 다른 여성은 '나도 누군가의 용기가 되길 바란다'는 독려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어떤 여성은 굽 높은 구두를 '전족(여성의 발을 묶어 인위적으로 작게 만드는 중국의 풍습)'이라고 불렀다. 그는 '전족'들을 봉투에 담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는 #탈코르셋 운동(트위터 갈무리)© News1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는 #탈코르셋 운동(트위터 갈무리)© News1

◇#탈코르셋은 "정해진 美를 거부하는 움직임"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화장과 예쁜 옷, 긴 머리카락을 거부하는 여성의 외침은 무엇을 향한 갈망일까.

전문가들은 탈코르셋 운동을 "정해진 답을 거부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왜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에서 젠더사회학을 연구하는 임인숙 교수는 한국을 '바디코르셋(body corset) 사회'라고 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는 것을 '여자다움'으로 부르고, 이 여성성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임 교수에 따르면 여성의 몸에 코르셋을 입히는 것은 여성 스스로 '꾸미는 만족'보다 '꾸미는 것을 여성의 본능이자 미덕'으로 보는 남성주의 권력이다. 그렇게 입혀진 코르셋은 필연적으로 여성을 제한하고 구속한다.

임 교수는 "서양은 코르셋을 벗어던졌고 중국은 전족에서 해방됐지만 한국은 유독 몸에 강박적인 관심을 기울인다"며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현상이나 성형기술이 유독 발달한 것이 그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일상적인 강박은 1950~60년대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있다"고 봤다.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은 1968년 미국에서도 있었다. 그해 9월 미국 애틀랜틱 시티에 열린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밖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들이 '자유의 쓰레기통'(Freedom Trash Can)에 치마와 브래지어를 버렸다.

임 교수는 탈코르셋 운동을 "정해진 답(아름다움)을 요구하는 타인의 시선을 거부하고 '나만의 자연스러운 모습' 또는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겠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성차별적 규정에 맞서는 상의탈의 퍼포먼스를 벌이다 경찰에게 제지 당하고 있다. 이 단체는 페이스북이 남성의 나체 사진은 제제를 가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나체 사진만 삭제하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이번 시위를 진행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성차별적 규정에 맞서는 상의탈의 퍼포먼스를 벌이다 경찰에게 제지 당하고 있다. 이 단체는 페이스북이 남성의 나체 사진은 제제를 가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나체 사진만 삭제하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이번 시위를 진행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다원주의로 가는 사회…왜 그녀들은 옷을 벗었나

이인숙 건국대학교 교수(여성학)도 탈코르셋 운동을 '급진적인 여성주의 운동'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와 맞닿은 주체적인 선언"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가져온 결과는 '남녀평등'이었고, 19세기 중반에는 이를 뛰어넘어 '성 해방 운동'으로 이행하기 시작했다"며 "오늘날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다양성의 존중'에서 탈코르셋 운동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교수는 "텔레비전을 켜면 보이는 연예인과 이를 꿈꾸는 어린아이가 과연 건강한 사회냐"고 반문했다. 다양한 사고와 행동을 존중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획일적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지향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를 역행하는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이 교수는 "어째서 여성들이 상의를 벗기 시작했는지, 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외치고 정해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dongcho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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