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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방송·통신 융합시대"…'칸막이 규제' 여전

[방통 융합시대, 판을 키우자④-끝] CPND 융합시대…정책은 '제각각'

(서울=뉴스1) 박희진 기자 | 2015-12-31 08:10 송고
서울 목동 KT올레미디어스튜디오에서 열린 '위성 UHD 한반도 전역 실험방송 기념식'에서 위성을 활용해 한반도 전역에서 시청 가능한 차세대 영상압축기술 'HEVC' 기반 초고해상도(UHD) 방송을 선보였다. 
서울 목동 KT올레미디어스튜디오에서 열린 '위성 UHD 한반도 전역 실험방송 기념식'에서 위성을 활용해 한반도 전역에서 시청 가능한 차세대 영상압축기술 'HEVC' 기반 초고해상도(UHD) 방송을 선보였다. 


'방송통신 융합'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제기돼온 해묵은 이슈다. 1995년 케이블TV 도입으로 유료방송 시대가 열렸고 2000년에 위성방송이 등장했다. 2008년부터는 인터넷 기반 IPTV 서비스가 시작됐다. 통신용으로만 사용하던 광케이블이나 동축케이블을 IPTV라는 방송용으로도 활용되면서 '방통융합'은 이미 10년전에 현실화된 것이다. 이제는 넷플릭스같은 방송도 통신도 아닌 제3의 사업자 'OTT'(Over the Top) 서비스도 등장해 국경없이 전세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는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방송통신 정책은 여전히 '칸막이'로 나눠져 있는 실정이다. 방송은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주무부처가 이원화돼 있는데다가 지상파는 방통위, 유료방송은 미래부로 방송 성격에 따라 정부업무가 또 나눠져 있다. 게다가 미래부가 유료방송 진흥 기능을 갖고 있지만 방통위는 '사전동의'라는 이름으로 SO 재허가권 등 각종 규제권한을 갖고 있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업무 성격이 크게 다르다. 방통위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합쳐져 2008년 출범했다. 그러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다시 미래부와 방통위로 분리되면서 현재 방통위는 사실상 과거 방송위원회 역할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다보니 방통위의 최우선 가치는 '방송의 공공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상파 방송을 관리하는 업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미래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진흥에 모든 업무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처럼 미래부와 방통위는 규제에 대한 철학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방통위는 5인의 상임위원들이 모든 결정을 하는 합의제 기구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결정한 정책이 여야로 대표되는 상임위원들의 상황논리, 정치논리에 좌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될리 만무하다.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정책은 항상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두 기관은 같은 사안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으니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최근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이 터져나온 것도 급변하는 시장의 힘에서 비롯된 것인데,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두 회사의 M&A건에 대해서도 미래부와 방통위의 시각차는 커 보인다.
◇방송·통신 융합 대세인데…규제는 '칸막이'

방송통신 융합시대라지만 당장 방송만 해도 조각조각 나눠져 있다. 크게 지상파와 유료방송으로 나뉜다. 지상파는 방통위가, 유료방송은 미래부가 맡는다. 유료방송은 또 다시 케이블TV(SO), 위성방송, IPTV로 나뉜다. 그간 동일한 유료방송시장에서 경쟁하면서도 케이블TV(SO), 위성방송은 방송법, IPTV는 IPTV법으로 별도 법이 적용돼왔다.

이유는 '태생'이 달랐기 때문이다. IPTV는 노무현 정부 시절 ICT 정책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통부에서 추진해온 사업이다. 급성장하는 ICT 관련 업무를 놓고 부처간 '밥그릇' 싸움이 극에 달했던 때다. 결국 IPTV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교체기인 2008년 상용화되면서 방송법과 별도의 IPTV법에 적용받게 됐다.

위성방송은 사업자가 스카이라이프 1개밖에 없어 유료방송의 독점방지 차원에서 위성방송은 케이블 SO 지분 33%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반면, IPTV는 처음부터 소유·겸영 제한이 없었다.

유료방송 1세대인 케이블은 규제가 더 촘촘했다. SO는 전체 방송권역 77개의 3분의 1을 초과해 소유 겸영할 수 없었다. 이후 이 규제는 5분의 1로 완화됐고 지난해 2월에는 전면 완화됐지만 거의 20년간을 권역규제를 받았다. 이제는 단일 SO가 전체 권역의 SO 인수도 가능하다. 다만, 전체 유료방송가입자의 3분의 1이상을 갖지 못하는 합산규제는 맞춰야 한다.

사실 유료방송시장에서 한 사업자가 전체 시장 점유율 33%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합산규제가 지난 6월부터 시행되면서 이미 IPTV, SO, 위성 등 유료방송은 동일한 시장 기준으로 점유율 규제를 받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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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방송통신 융합 트렌드는 가속화되는데 유료방송에 대한 칸막이 규제의 불균형과 비효율성 문제는 계속 지적돼왔다. 하지만 제도 개선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뒤늦게 통합방송법이 2013년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2년에 걸친 논의끝에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내년 국회에서 통합방송법에 관한 방송법개정안이 공포, 시행되면 IPTV법은 8년만에 사라지게 된다.

통합방송법이 시행되면 케이블·위성·IPTV를 통합한 '유료방송사업' 개념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동일서비스 동일규제'의 규제틀이 마련된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국회 통과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 통합방송법으로 묶이지만 각각의 SO 관련 방송법, IPTV법은 그대로 유지된다. 구체적인 규제를 담을 방송법시행령도 남아있는 과제다.  

당장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 관련해서도 반대진영은 통합방송법이 동일서비스 동일규제인 만큼, IPTV의 SO 인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소유 겸영 규제가 없었던 IPTV법에 따라 KT(IPTV)는 KT스카이라이프(위성)를 겸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도 선을 긋도 있다. 미래부에 따르면 통합방송법은 규제일원화와 규제형평성을 위해 IPTV도 매체간 겸영규제 대상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법 체계상 구체적인 규제는 시행령에 정하게 돼있다. 구체적인 규제내용이 없는 수권 조항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시장은 급변하는데…'진흥'은 없고 '규제'만

여러개로 나눠져 있던 유료방송 관련 법은 하나로 '통합'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책 효율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통합방송법이 등장하면 칸막이 규제 문제가 과거에 비하면 해소될 것"이라며 "하지만 미래부, 방통위로 이원화돼 있는 현 구조에서 정책의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방통융합' 흐름에 맞춰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조직을 방송통신위원회로 합쳤지만 정책 효율성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조직 통합은 이뤄졌지만 규제 융합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또 독임제가 아니라 여야 위원으로 분리된 합의제 기구의 한계로 진흥보다는 규제에 방점이 찍혔다. 어떤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여야로 의견이 나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광훈 중앙대 교수는 "한국은 방송을 고유의 공익성, 지역성 가치로 보는 인식이 강해서 방송통신이 융합되는 시장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적었다"며 "또 규제와 법이 이해관계자 문제가 되고 시장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방송내에서도 IPTV는 방송법에 적용받지 않고 별도법이 있고 통신사업자로 별도법이 존재해 각각 다른 규제의 칸막이식 규제가 이뤄져 왔다"며 "이 때문에 방송사, 케이블의 기득권 싸움만 부각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방통위는 다시 둘로 쪼개졌다. 진흥 업무는 미래부, 규제 업무는 방통위로 분리됐다. 그러나 '진흥 매커니즘'은 좀처럼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게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미래부는 '사전 규제', 방통위는 '사후 규제'라고 업계에서 부를 만큼, 정부정책이 규제일변이라는 지적이다. 하나의 부처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둘러야 정책의 효율성과 일관성이 있는데 구분하다보니 '진흥없는 규제만 있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업계 전문가는 "2000년대에 방송통신 융합 논의가 나오자 시장에서 어떤 서비스가 나오고 어떤 서비스를 키워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이를 규제할 정부 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더 초점이 모아졌다"며 "서비스, 이용자 관점이 아니라 부처의 이해관계 문제로 융합 논의가 이뤄졌던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칸막이 규제는 결국 '독'이 돼 돌아왔다. SO는 '권역'이라는 보호막에 안주해왔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SO가 실기한 면이 크다"며 "권역보호에 갇혀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를 못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자초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ICT 분야에서 민·관을 두루 거친 한 전문가는 "과거 정통부가 해체된 이후로 ICT 주무부처가 제대로 된 산업육성 정책을 잘 모르고 있다"며 "정책의 실패, 나아가 정부의 실패는 훨씬 여파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개입이 오히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하는 상황을 뜻한다. 규제의 경직성, 불완전성, 근시안적 규제 등이 원인이다.

규제가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자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규제기관의 유권해석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상황논리가 규제정책에 우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간 갈등만 커지고 규제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혁신적으로 규제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신규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해도 허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사업자의 지배력을 깨고 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신규 사업자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규제때문에 신규 주자들의 진출길이 가로막힌다"며 "시장이 활력을 찾기에는 규제가 과도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수직적 칸막이식 규제체계에서 벗어나 'C-P-N-D'(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 생태계 융합에 따라 수평적 규제 일원화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기존의 칸막이식 규제로는 시너지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제한된다"며 "방송 통신이 융합돼야 시너지가 큰 만큼, 일원화된 통합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R&D 등 국가 주도의 진흥 정책이 줄고 그 역할은 민간(시장)이 하게 된다"며 "결국 정부에 남는 것은 규제인데 규제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일원화된 규제기구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b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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