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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침묵의 카르텔'에 언론도 책임 있다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3 언론도 문학권력 일부…문학지면 줄어 공론의 장 없애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06-30 18:53 송고 | 2015-06-30 20:44 최종수정
유명 소설가 신경숙 표절 논란이 한국문학이라는 체제 전체의 작동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며, '누가 한국문학을 죽인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국문학이 처한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1~2년 새 국내 주요 작가들은 신작을 내놓지 않다. 독자들은 외국 번역문학에 열광하고, 소설의 판매부수가 인문서에 밀린다. 초판 3000부 인쇄가 기본이던 문학책들은 그 절반 정도만을 찍는 상황이다.
문학담론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화제를 모으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단의 일각에선 "문학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면서 "한국문학의 건강함을 위해 신경숙 아닌 다수의 다른 에이스를 발굴하고 육성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뉴스1의 기획시리즈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는 다섯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대표 작가 신경숙의 표절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문학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짚어볼 예정이다.

한국문학 추락의 원인은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하게 복무한 대형출판사,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문학이 아닌 책상에서 이뤄지는 문학과 문학인을 양성해낸 대학 문예창작과, '돈이 안 된다'며 문학과 책 소개 지면을 줄이고 주례사 비평에 동참한 언론들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비평과 독자와의 소통에 주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문학인들, 책 한 권 사보는 데 인색했으면서도 갖은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누리꾼들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시리즈는 검토와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건강한 대안과 개혁의 방법을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네이버 뉴스 책 부문 6월 30일자 캡처© News1
네이버 뉴스 책 부문 6월 30일자 캡처© News1

◇관련기사

-'문학권력'된 출판사들, 개혁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문학에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작가정신 '실종', 왜?

-신경숙 '표절 의혹'…"'문학권력'된 출판사 책임 크다"

"문학권력 안에는 출판권력만 있는 게 아니고 그것을 비호하는 언론도 있다. 신문사 문화부 혹은 방송사 문화 담당 부서가 그동안 문화출판사에서 띄워주는 문인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검증하거나 객관적으로 그리려 했는지 묻고싶다."

15년전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예지에 작품을 싣고, 단행본으로 간행하고, 문예지 편집위원 등을 통해 이를 칭찬하고, 문학상을 줘 권위를 부여한 소위 '문단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에  언론이 제동을 걸기는 커녕 동조해왔다는 비판이다.

언론에 대한 비판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출판평론가 한기호 씨는 "신경숙 작가가 한국 대표 작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기사를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중소출판사 편집자는 "신경숙 뿐 아니라 유명작가가 책을 내면 같은 날 모든 언론사들이 거의 한 면을 할애해 기사를 쓴다. 이러니 그 책들이 안 팔릴 수가 있겠는가"하고 반문했다.

신경숙 표절로 촉발돼 '문학권력' 논란으로 문제가 확산되면서 지적되는 언론의 책임은 크게 몇 가지로 요약된다. 소위 문학권력들이 '주례사 비평'을 통해 실제보다 과대하게 작가들을 평가해 그들을 신화화할 때 언론이 이를 검증하지도 않고 단순히 확대 재생산했다는 점이다. 또한 출판과 문학 지면을 줄이면서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을 등한시해 건강한 비판과 검증이 이뤄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중앙일간지 문학기자 출신 언론인 A씨 역시 "신경숙 사태가 터지자 별안간 문학기자들이 정신차린 것처럼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는데, 내가 보기엔 기자들이 평소에 고민을 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15년전 신경숙의 표절문제가 처음으로 불거졌을 때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던 것은 '침묵의 카르텔'에 언론도 동조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언론이 묻어두었던 문제가 최근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은 기존 언론이 아닌 인터넷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현재의 '신경숙 표절'을 다루는 언론 역시 '선정주의'로 흐르고 있다"면서 "초반 모든 언론들이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보도한 후 정작 문제해결이 필요한 지금 단계에선 언론이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불거진 지 2주가 지나면서 신경숙 표절과 문학권력을 다루는 기사들은 대폭 줄어들고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언론까지 배제하고 문학권력에 대한 비공개좌담회를 다섯 명의 비판적인 평론가들에게 청했지만  언론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고 있는 상태다. 

표절문제를 전면에서 제기한 평론가들, 일부 언론과 독자들은 장기적인 방지책 없이 표절사태가 흐지부지 봉합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 독자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지 못하고 신경숙 한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사태가 끝난다면 한국문학은 독자를 계속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신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사태를 막기 위해선 언론을 통한 공론과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선 신문 지면이든, 포털 사이트든 문학 및 출판 관련된 상시적인 토론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학과 출판의 지면을 언론이 보장하는 것이 신경숙 표절사태의 재발을 막는 방법"이라며 "언론사는 상시적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과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해주고 기자들은 비판의식을 갖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언론인 A씨는 "문학 기사는 다른 분야보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인데 기자들의 근무여건 자체가 열악해지고 컴퓨터로 기사를 쓰게 된 후 속도가 중시되면서 문학기사의 전문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분위기, 문화를 '돈 안되는 분야'라고 보는 언론사내 인식 역시 진지하고 내용이 충실한 문학 기사 생산을 어렵게 한다"면서 "언론사내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현직 문학담당기자는 "독자가 점점 줄어드는 문학의 위기 상황에서 작가나 출판사를 비판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문학이라는 작은 범위에서라도 '문학권력'이 존재했다면 언론인으로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당연히 했어야만 했다"고 반성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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