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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에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작가정신 '실종', 왜?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2. '미문 중심' 문예창작과가 문단 획일화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06-29 18:22 송고
편집자주 유명 소설가 신경숙 표절 논란이 한국문학이라는 체제 전체의 작동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며, '누가 한국문학을 죽인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국문학이 처한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1~2년 새 국내 주요 작가들은 신작을 내놓지 않다. 독자들은 외국 번역문학에 열광하고, 소설의 판매부수가 인문서에 밀린다. 초판 3000부 인쇄가 기본이던 문학책들은 그 절반 정도만을 찍는 상황이다.

문학담론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화제를 모으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단의 일각에선 "문학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면서 "한국문학의 건강함을 위해 신경숙 아닌 다수의 다른 에이스를 발굴하고 육성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뉴스1의 기획시리즈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는 다섯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대표 작가 신경숙의 표절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문학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짚어볼 예정이다.

한국문학 추락의 원인은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하게 복무한 대형출판사,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문학이 아닌 책상에서 이뤄지는 문학과 문학인을 양성해낸 대학 문예창작과, '돈이 안 된다'며 문학과 책 소개 지면을 줄이고 주례사 비평에 동참한 언론들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비평과 독자와의 소통에 주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문학인들, 책 한 권 사보는 데 인색했으면서도 갖은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누리꾼들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시리즈는 검토와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건강한 대안과 개혁의 방법을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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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권력'된 출판사들, 개혁 성공할 수 있을까?
"신경숙의 표절 의혹은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창작방법이 실생활과 '대지'를 도외시하고 책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필사(筆寫)훈련과 같은 잘못된 기능훈련으로 흘러버린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열린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개최한 '최근의 표절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긴급 토론회에선 문학권력의 문제 뿐 아니라 '문학기능인'을 양성하는 한국문학의 창작방법이 신경숙 표절 사태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학평론가인 정은경 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필사를 하거나 영화나 문학작품 등의 1차 텍스트를 중심으로 창작공부를 하고 이를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쓰는 것이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주요 창작 흐름"이라면서 "그 많은 세련된 문장과 구성, 이미지, 비유, 발상 등에도 이들이 우리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과 대지에서 빚어내는 신동엽의 소박한 언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2015년 주요 중앙일간지 소설부문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한 두명을 제외하고 문예창작과와 국문과 출신인 문학청년들이었다. 기독교 교육을 전공한 문화일보 당선자인 도제희 씨를 제외하고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자인 장성욱 씨는 서울예대 문창과 학부 및 명지대 문창과 석사, 동아일보 중편 당선자 전민석 씨는 추계예대, 경향신문의 사익찬씨는 동국대 문창과 출신이다.
세계일보와 서울신문의 2관왕을 차지한 이은희씨는 인하대 국문과, 한국일보 당선자 이지씨는 숙명여대 국문과, 동아일보 단편 당선자인 한정현 씨는 조선대 영어과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노동자들을 포함해 다양한 학력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등단 내지는 작품을 출간할 수 있었던 데 비해 1990년대 들어 문학판은 '문예창작과' 가 압도적인 비중을, 나머지를 '국문과' 혹은 다른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나눠갖는 식으로 재편됐다.

소설가 K씨는 "1990년대부터 문창과 출신들이 문단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들은 단편 부문에선 세련된 문체로 수준높은 단편들을 생산했다"고 평가했다. K씨는 "하지만 상상력과 뒷심 부족으로 대부분 장편부문에서까지 큰 활약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색 이력을 가진 문학청년이 등단하면 일단 주목을 받기는 한다. 작가가 되기 전 요가 강사로 일했던 김혜나, 현직 학교 교직원인 조현씨, 목사출신인 주원규씨, 발레리나 출신 하재영 씨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들은 그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5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작가들의 학력 및 이력을 분석해보면 등단 당시의 문창과 지분(?)구조가 중견작가 지분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상을 받은 김숨씨가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출신, 우수상 작가인 이평재씨가 화가 출신인 것을 제외하고 전성태, 조경란, 윤성희 씨가 문예창작과 출신이었으며 손홍규 작가가 동국대 국문과, 한유주씨가 홍익대 독문과, 이장욱씨가 고대 노문과 출신이다.

이같은 문예창작과, 국문과 위주의 문인들이 문단의 압도적인 주류가 되면서 다양한 문학이나 삶과 밀착된 문학이 귀해졌고 그것이 문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흥미를 떨어뜨린 이유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 문창과 출신 회사원은 "문창과 출신의 가장 큰 문제는 사고의 폭이 좁다는 것"이라면서 "실제로 이색 이력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문창과를 들어오지만 학교에서 부각을 나타내거나 등단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생생한 삶의 체험 보다는 절제되고 훈련된 문장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K씨 역시 "공대나 의대 출신 작가들이 독특하고 다양한 내용의 작품을 내놓아도 이들은 정통문학이 아니라는 인식이 문단에 있다"면서 "재미있고 쉽고 화통한 작품은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뚜렷한 사건도 없이 독백에 불과한 것이라도 아름답게 단편에 담으면 이를 더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나는 필사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문창과 출신들은 다들 몇십 권씩 필사한 노트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이 창의적인 교육인가 의문을 갖고 있다. 필사하다 보면 문장이 풍성해지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자기 색깔을 잃게 되는 것 아닌가"하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서울 시내 한 대학 문창과에 강의를 나가는 K 강사는 "문학적으로 글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단기간에 익히게 하는 방법으로 '필사'가 문창과 내에서 장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비문과 우문 등을 잡는 방법을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에 정규 수업 중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김승옥, 오정희, 윤대녕 등의 작품의 필사를 과제로 내주거나 방학때 연습해보라고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신 씨 역시 지난 23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국’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봐도 안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다"고 답해 논란을 빚었다. 서울예전(서울예대 전신) 문창과 출신인 신경숙 작가는 자신의 산문 등을 통해 '문장훈련의 일환으로 막대한 양의 필사를 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K강사는 선굵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깊이있는 인식을 키워주기 보다 미문을 쓸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대해서 "신춘문예 소설부문은 주로 단편을 통해 완결성, 예비 작가의 미학적 훈련 정도를 가늠한다. 이에 따라 문창과 커리큘럼도 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문의 단편 쓰기에 문창과의 교육 초점이 맞춰진 것을 비판하는데 사실상 글이라는 것이 장기적인 것이어서 교육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며 문창과 교육과정은 장편에 필요한 세계관, 인문학적 토대 등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문창과의 '문학기능인 양성'이 단순히 커리큘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반과 연관된 문제라고 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대형출판사들만이 살아남고 자본력이 열세인 중소출판사들은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는 시도 자체가 어려워진 점, 전반적인 문학과 인문학의 위축, 취업난 등이 복합적으로 연관돼 다양성을 키우기보단 당장 등단의 지름길을 알려주는 과정이 됐다는 것이다.

문창과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어 학부과정은 국문과에 통합시키고 문예대학원을 따로 만드는 등의 통폐합의 진통을 겪고있다. 한 문창과 대학원 과정의 학생은 "취업이 안되는 비인기학과라 학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교수님들도 혹독한 비판보다는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작수업은 약 15명 정도의 정원인데 2,30대의 젊은층은 20~30%밖에 안되고 4,50대의 중년 여성, 퇴직한 60대 노인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서 "정규학업과정이란 느낌보다 교양과정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문창과의 수준저하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하지만문창과 교육과정과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희망적인 의견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책을 안 읽지만 이야기와 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더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시와 소설, 희곡은 아니라도 극작, 만화 등 다른 장르는 발전하고 있어 문창과는 여러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한국 소설의 미래에 대해서도 "2000년대 후반 장편으로 한국소설의 위기를 타개하자며 장편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들이 제정되는 등 '장편대망론'이 부상하며 그에 따른 노력이 있었다"면서 "그리고 몇년을 기다린 최근 재미있는 장편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신경숙 사태가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면서 한국문학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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