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세상의 종말과 근대 국가 일본의 탄생" [역사&오늘]

5월 3일, 일본 최후의 무가정권 도쿠가와 바쿠후의 소멸

'대정봉환' 장면(출처: 邨田丹陵, Tanryō Murata, 채색화(19C),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68년 5월 3일, 보신전쟁(1868-1869)에서 바쿠후(막부) 지지파의 본거지인 에도성이 천황을 지지하는 신정부 세력에 함락됐다. 이로써 일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바쿠후인 '도쿠가와 바쿠후'가 사실상 소멸했다. 이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일본이 봉건 사회에서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후 수립된 일본의 봉건적 군사 정권이다. 약 265년 동안 지속된 이 바쿠후는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무가 정권이었으며, 에도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를 이끌었다.

19세기 중반 서양 열강의 도래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바쿠후는 개항과 외국과의 통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보다 외세의 침략에 대한 위협을 더 크게 인식했다. 이에 서양과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펼쳤지만, 오히려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낙후됐다.

막부의 정치, 경제 체제는 오랜 시간 굳어져 있었다. 농민들은 바쿠후의 착취에 시달렸고, 도시 지역에서는 상인과 공업자들이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갈망했다. 또한,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서양 학문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바쿠후의 권위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다.

19세기 후반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요구하는 존왕양이(왕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침)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바쿠후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천황 지지 세력을 키워갔다. 1867년 바쿠후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권 유지가 불가능해졌음을 깨닫고 천황에게 정권을 자진 반납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바쿠후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로써 약 700년 동안 지속된 바쿠후 통치 체제가 완전히 종료되고 일본은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치 체제로 이행됐다. 동시에 일본 근대화와 산업화의 여명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