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인 줄 알았는데 술집 종업원?"…결혼 전제 14년 사귄 여친 살해
말다툼하다 잠들자 목·쇄골 흉기로 수차례[사건속 오늘]
"'죽여' 환청 듣고 결행" 심신미약 주장…징역 25년 선고
- 김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년 전 오늘 새벽 50대 남성 A 씨는 잠이 든 여자 친구 B 씨에게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렀다. 결혼을 전제로 14년이나 교제한 연인이 목을 찔려 고통에 몸부림치는데도 A 씨가 그토록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08년께부터 B 씨와 교제해 온 A 씨는 여자 친구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가 호프집에서 남성 손님들의 술 시중을 드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분노와 배신감에 차올랐다.
이후 여자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말다툼을 했고, 여자 친구가 잠에 들자 A 씨는 살해를 마음먹고 흉기를 들고 와 실행에 옮겼다.
A 씨는 범행 후 서울 상암동의 한 방송국으로 향한 뒤 이어 택시를 타고 경기 시흥 정왕동, 이천, 남양주 별내, 서울 동대문역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서울 동묘앞역 근처의 한 여관에서 커터 칼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종교집단에 끌려갈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제보하려 방송국에 간 것"이라며 "자해했던 건 어둠의 세력에게 잡히면 처참하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랬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있었던 1심 재판에서 A 씨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여자 친구로부터 종교적인 얘기를 들은 후 환각이 보이고 환청이 들렸다"며 "여자 친구를 살해하라는 환청을 듣고 살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범행 경위와 방법, 정신감정 결과에 비춰봤을 때 범행 당시 A 씨가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A 씨는 과거에 환청으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은 사실도 없었으며, 폭력 전과가 있는 데다 재범 위험성도 '높음'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누워있는 피해자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는 점에서 살해 고의가 매우 확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양 손가락 부위에 베인 상처가 있는 사실에 비춰보면 공격을 방어하려던 피해자를 공격해 살해한 것으로, 피해자가 겪었을 신체적 및 정신적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며 A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지난 1월에 열린 항소심에서도 A 씨는 일관되게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주장을 유지했다.
변호인이 A 씨에게 "범행 전날 피고인을 죽이려는 어둠의 세력이 왔다는 환청을 들었냐"고 묻자, A 씨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여자 친구가 나에게 '당신은 어둠의 세력 때문에 내일 죽을 사람'이라고 했다"면서 "어둠의 세력이 여자 친구를 '죽여 죽여'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고 했다. 이어 "'죽여'라는 환청이 들릴 때 섬광이 번쩍번쩍 빛나면서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전기가 왔다"고 말했다.
A 씨의 변호인은 최후진술에서 "이 사건은 범행 동기 부분이 중요하게 심리돼야 한다"면서 "피고인의 진술은 꾸며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또 범행 후 방송국을 찾아간 행동은 일반적인 살인 사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행동"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날 재판부는 유족에게 진술 기회를 줬는데, 재판을 방청한 B 씨의 딸은 "돌아가신 저의 엄마가 A 씨로 인해 너무 많은 고통을 받고 고생하셨다"며 "저 또한 A 씨의 어머니에게 욕설과 폭언을 듣고 살았다. 지금도 피고인이 매일 꿈에 나타나 저희 엄마를 죽인다고 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희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흐느꼈다.
재판부는 "원심과 양형의 요소에 사정 변경이 없고 피해자의 목과 쇄골 부위를 흉기로 수회 찔러 살해하는 등 범행방식이 잔혹해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간 점, 세 차례 벌금형 외에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기타 원심의 양형 요소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형은 적정하고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며 A 씨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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