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파보다 무섭다…덜 추울 때 생기는 사고주범 '블랙 아이스'
수분함량 높아 쉽게 얼고 쉽게 붙어…매연 섞이며 안보여
비 내린 뒤 얼어붙어 겹겹이 쌓이기도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겨울철 다중 추돌사고를 유발하는 '도로 살얼음'(블랙 아이스)은 눈이 내린 뒤 기온이 덜 추울 때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는 눈 속 습도와 지표면 온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5일 기상청에 따르면 기온이 비교적 높은 상태에서 눈이 내리면 습기를 머금은 습설(젖은 눈)이 형성돼 지면에 잘 달라붙고 곧바로 얼어붙는 특성을 보인다. 밤사이 기온이 급강하하면 이렇게 쌓였던 습설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 살얼음으로 변하며 도로 표면을 미끄럽게 만든다.
매연과 미세먼지 등이 섞이며 말 그대로 '검은 얼음'(black ice)이 된다.
특히 지면 온도가 0도 전후로 오르내릴 때 이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날(14일) 경기 고양시 자유로에서 발생한 44중 추돌사고와 서울문산고속도로에서 벌어진 43중 추돌사고, 서울 노원구 월계2지하차도에서 일어난 18중 추돌사고 등이 이러한 도로 살얼음으로 인해 발생했다.
당시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0.7도(종로구)였으며, 지역별로는 -2.3도(은평구)에서 2.2도(영등포구) 사이를 오갔다. 내린 눈·비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기 쉬운 조건이었다. 고양시 기온도 -2~0도 안팎에 머물러 비슷한 상황이었다.
-1~-5도는 눈이 무겁고, 밀도 있게 내리고, 쌓이기에 적합한 기온이다.
국가농림기상센터의 '기상청 관측 자료와 눈 밀도 공식을 이용한 적설하중의 근사 추정' 연구에 따르면 적설 밀도는 기온과 긴밀한 관련성을 보인다. 이를테면 -10도 이하의 한파일 때는 눈이 가벼운 결정 형태로 존재해 쉽게 날아가거나 흩어지는데, '펄펄 눈이옵니다'는 가사로 유명한 동요 '눈' 속 '떡가루'로 비유된 눈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기온이 다소 높으면 눈의 수분 함량이 증가해 지면에 단단히 달라붙는다. 눈이 녹았다 다시 얼면서 블랙 아이스를 형성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린 뒤 강추위가 찾아와도 도로 살얼음이 나타날 수 있다. 비교적 높은 기온에서 내린 액체 상태의 비가 차가운 지표면이나, 지표면 인근의 찬 공기에 닿자마자 얼어붙어 표면에 겹겹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어는 비' 역시 기온이 다소 오르내릴 때 자주 발생한다.
출근 시간대 도로에서 살얼음을 목격하는 사례도 잦다. 한국환경과학회에 발표된 '겨울철 노면에 발생하는 어는 비와 블랙아이스의 기상학적 분석에 관한 사례 연구'에 따르면 '어는 비에 의한 살얼음'은 오전 6~8시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날이 한동안 풀릴 때 최저기온은 이른 오전에 가장 낮아지는 현상과 맞물려 살얼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블랙 아이스는 눈이 모두 녹아 없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얇고 투명한 얼음층이 도로를 덮고 있어 운전자가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며 "특히 야간이나 새벽, 교량과 터널 입구, 그늘진 도로에서는 블랙 아이스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겨울철 출근길에는 안전 운전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상청 관계자도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을 때보다 0도 근처에서 변동할 때 도로 살얼음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며 "겨울철 강설 이후에는 도로가 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충분한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줄여 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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