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압구정만 혹독?…"한번 흔들리면 여의도·목동도 휘청"
조합과 갈등 고조…재공모 안하면 설계사 '징계' 가능성
한남·성수 '노른자 땅' 정비사업 줄이어…"원칙 지켜야"
- 전준우 기자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압구정3구역 조합과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압구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여의도·목동 등 서울의 '노른자 땅'에서도 편법이 통할 수밖에 없다며 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 시장의 대표 정비사업인 '신속통합기획'은 압구정을 비롯해 총 82개소에서 추진 중이다. 여의도 한양·시범아파트의 신통기획안이 확정됐고, 목동신시가지 7·8·10·12·13·14단지, 신월시영아파트 등 1만7000여세대도 신통기획 자문방식(패스트트랙)으로 추진된다.
이외에도 창신·숭인동 일대를 비롯해 가리봉2구역, 신림7구역 등 서울의 소외지역도 신통기획을 적용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신통기획은 정비계획 수립 과정에서 서울시가 통합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까지 통상 5년 정도 소요되던 기간을 최대 2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
그동안 신통기획 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민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고 서울시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나왔는데, 압구정3구역에서 실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는 압구정3구역의 신통기획 가이드라인을 통해 용적률 최대 300%를 적용했는데, 설계사 선정 과정에서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는 용적률 최대 360%를 적용한 설계안을 제시했다.
시는 조합원 투표에 앞서 희림이 제시한 설계안은 명백히 사기라고 보고 경찰에 사기 미수 등 혐의로 고발했다. 압구정의 부동산 시세를 감안하면 용적률 360%를 적용할 경우 1조원 이상의 재산상 이익이 가능하다는 게 서울시의 판단이다.
시 관계자는 "압구정 집값을 고려할 때 용적률을 60%p 올리면 조 단위 사업수익이 예상되고, 이는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일반적으로 잘 보이려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며 "재산상 이익을 부풀려 조합원을 현혹한 것은 명백한 사기 행위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설계 공모를 중단하라고 시정 조치를 내렸음에도 조합은 지난 15일 투표를 강행했고, 희림이 선택받았다. 희림이 투표 당일 용적률을 300%로 낮추긴 했지만, 서울시는 "조합 투표가 무효"라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조합 내부에서 재공모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법률적 검토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압구정3구역 조합 관계자는 "현재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는 조합 측이 재공모에 나서지 않을 경우 희림건축에 대한 '징계'도 가능하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건축사법에 따라 심각한 시장 교란을 한 건축회사로 판단, 서울시 건축사 징계위에 회부되면 최대 24개월까지 영업정지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시가 이처럼 초강수를 두는 것은 압구정 재건축 과정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통하면 여의도·목동 등 서울 전반의 정비사업이 휘청일 수 있어서다.
압구정3구역에서 한 번 편법이 허용되면 신통기획을 진행 중인 다른 사업지도 걷잡을 수 없다고 시는 우려한다.
시는 압구정3구역 사태를 통해 특정 조합원들의 재산권만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기조를 명확히 드러냈고, 신통기획뿐만 아니라 한남·성수·노량진 등 서울의 노른자 땅의 정비 사업에도 예외 없이 적용할 전망이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설계사뿐만 아니라 시공사에도 절대 편법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이은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도 원칙이 무너져서 발생한 일이라며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다. 오 시장이 '부실 공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상위 10대 건설사가 즉각 동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비단 압구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 편법이 통하면 앞으로 여의도, 목동 등 정비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junoo568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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