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던 70대 할머니 목숨 구한 ‘도시락 배달의 기적’

[제주통합돌봄]①취약계층 한정된 돌봄 모든 도민 확대
"고된 일이지만 어르신들 감사 인사에 보람"

편집자주 ...제주도는 지난해부터 기존 돌봄 서비스의 사각지대를 보완한 통합돌봄서비스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뉴스1제주본부는 통합돌봄 사례 수기를 바탕으로 참여자들의 생생한 얘기를 2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제주통합돌봄서비스 중 하나인 도시락 배달(제주도 제공)/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에서 근무하는 변숙희 팀장은 유례없는 폭염이 전국을 덮친 7월 여름 어느날을 잊지못한다.

변 팀장은 그날 통합돌봄서비스에 참여 중인 자활근로자 A씨에게서 다급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A씨는 평소처럼 도시락을 전달하려고 70대 김모 할머니 댁을 찾았다. 그런데 집 문 앞에는 이틀 전 배달된 도시락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설마..."

도시락 배달을 하러갈때마다 반갑게 문을 열고 맞아주셨던 김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 아닌지 불길함을 느낀 A씨는 할머니를 부르며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거실과 욕실 사이에 쓰러져있있었다. A씨는 바로 119에 신고하고 돌봄서비스를 관리하는 변 팀장에게도 알렸다.

다행히 김씨 할머니는 A씨의 빠른 대응 덕분에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김 할머니의 자녀들은 도외에 살고 있어 직접 돌보기가 어려워 난감해하다 '제주가치통합돌봄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한다.

A씨가 소속된 지역자활센터는 김 할머니처럼 일상생활이 어렵고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서 식사 준비를 할 수 없는 대상자에게 음식을 조리해 집으로 배달해 주는 제주가치통합돌봄 식사서비스 제공하고 있다.

변 팀장은 "어르신들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약해지고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몰라책임감과 불안함을 늘 갖고 있다"며 "이 서비스가 없었다면 할머니가 어떻게 됐을까?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다가 한편으론 한 생명을 구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다"고 했다.

한정된 돌봄서비스 모든 도민으로 확대

제주가치 통합돌봄은 어린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한정됐던 돌봄서비스를 모든 도민으로 확대한 복지정책이다. 서비스 대상이 경제적 형편이 아니라 돌봄이 실제 필요한지에 따라 정한다. 다만 서비스 비용은 소득 수준에 따라 전액 지원하거나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자격기준 등으로 기존 돌봄서비스 대상이 아닌이들에게 가사·식사 등 '틈새돌봄'을, 갑작스런 위기나 예측하지 못한 위급한 상황에는 '긴급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는 올해까지는 3대 서비스(가사, 식사, 긴급돌봄)를 시범 운영하고 2025년 1월부터 5대 서비스(가사지원, 식사지원, 동행지원,운동지도, 주거편의)로 확대할 예정이다.

제주통합돌봄서비스 중 하나인 도시락 배달(제주도 제공)/뉴스1

이 서비스는 돌봄 이용자들뿐만 아니라 돌봄 서비스를 담당하는 참여자들에게도 남다르다. 서비스 제공은 제주도가 선정한 13개 민간기관이 맡는데 자활근로단체도 포함됐다. 저소득주민인 자활근로 참여자들이 돌봄 기술도 배우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자활과 자립 의지를 키워갈 수 있다.

변 팀장은 "폭우가 쏟아져 옷이 다 젖고, 눈이 내려 살얼음 길이 되어도,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흘러도, 이러한 마음들이 밑바탕이 되어 그저 얼른 이용자를 만나고 도시락을 전해드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지 않는 동네가 없고 오르지 않는 길이 없다"고 전했다.

돌봄 서비스는 고된 작업이지만 돌봄 제공자들은 "나의 부모님, 나의 가족, 아니 내가 받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으로 힘을 내고 어르신들이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꺼내 주며 감사 인사를 하면 소중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서비스 대상자의 한 자녀는 홀로 사는 부모를 만나러왔다가 도시락 가방을 보고 "자식도 챙겨주지 못한 식사를 그동안 챙겨주고 계셔서 감사하다"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변 팀장은 "한 어르신은 식사서비스를 받고 몸무게가 늘어났다고 좋아하셨고 또다른 어르신도 혼자 음식 만들어 먹기가 힘들어 매일 컵라면으로 때웠는데 정기적으로 도시락을 제공 받아 정말 감사하다고 꾸준히 인사 전화를 주시기도 한다"고 전했다.

k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