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울타리' 낮아져 국가재정사업 쉬워진다…정치권 남용 우려

예타 대상 사업, 총 사업비 500억→1000억 이상으로 상향
총선 앞두고 포퓰리즘 남발 가능성…"재정 총량 넘길수도"

윤영석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4회 국회(임시회) 기획재정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3.2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세종=뉴스1) 손승환 기자 = 국가 재정사업의 추진이 더욱 쉬워질 전망인 가운데 총선을 1년여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성 정책에 맞설 '방파제'가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정준칙을 도입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로 인한 재정 남용을 보완하겠다는 것이 재정 당국의 당초 목적이었지만, 재정준칙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다.

13일 국회,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경제소위)는 전날 회의를 열고 사회간접자본(SOC) 및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조사 대상 기준 금액을 상향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SOC·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500억원 이상'으로 각각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도 통과한다면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은 지난 1999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24년 만에 오르게 된다.

반면 재정의 총량을 조절해 줄 재정준칙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되 부채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2% 이하로 강제하는 내용이다.

기재위 여당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전날 소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재정준칙은 공청회 등 과정을 거치면서 여야 공감대가 상당히 이뤄졌고 법안 문구까지 만들었다"며 "그런데 민주당이 너무 급하게 제동을 걸고 있다. 예타 관련 법안을 더 지체할 수 없어서 재정준칙은 논의에서 제외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재정준칙이 부재한 채로 예타 기준을 완화하게 되면 정치권의 '퍼주기식' 정책에 맞설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총선을 1년 앞둔 정치권은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를 의식한 예산 퍼주기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 전남권 의대 설립, 광주 군 공항 이전 등이 대표적이다.

예타 면제 기준을 사업 비용만 상향한 점도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예타는 사업에 드는 비용 이외에도 수익성, 타당성, 지역 간 형평성 등을 함께 고려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철도 사업이라면 쾌속성이나 정시성 등도 예타 조사 대상이 된다. 국가 재정이 들어가는 만큼 사업을 보다 다각도로 살피겠단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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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우리나라의 국가 재정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067조7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GDP 대비로는 49.6%에 달하는 수치다.

추세적으로도 국가채무는 꾸준히 느는 실정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35.9%였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19년 37.6%, 2020년 43.6%, 2021년 46.9% 등으로 증가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주요내용'을 통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 49.8%, 2024년 50.6%, 2025년 51.4%, 2026년 52.2% 등으로 증가할 걸로 전망했다. 이르면 내년부터는 GDP 절반 이상이 나랏빚인 셈이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것과 예타 기준을 완화하는 것의 목적은 사실 비슷하다"며 "재정준칙은 큰 차원에서 총량을 정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고 예타 기준 완화는 분산된 조직,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다만 재정준칙이 있다면 총량을 넘지 않도록 울타리 역할을 할 텐데 (재정준칙과) 같이 가는 게 아니라면 기재부가 생각하는 총량을 넘어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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