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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는 美에 1/80, 희생자는 엇비슷…또렷한 총기강도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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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필리핀)=뉴스1) 이서희 통신원 | 2015-02-16 11:59 송고 | 2015-03-06 16:01 최종수정
필리핀 마닐라의 한 총포사에 권총이 진열돼 있다 © AFP=News1
필리핀 마닐라의 한 총포사에 권총이 진열돼 있다 © AFP=News1


동남아 여름 중 으뜸인 7월의 끝자락이었다. 사는 곳에서 약 두 달에 한번 꼴로 페스티발이 열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거리를 쏘다니며 축제를 즐겼다. 작은 수레바퀴 행상들이 온갖 종류의 바비큐 꼬치를 널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했고, 꼬맹이들 사이로 낮은 폭죽이 솟아올랐다.
농구장으로 사용하던 실내 체육관에는 커다란 이동식 조명 몇 개와 스피커 한 대가 들어서며 금세 북적이는 클럽으로 변모했고, 맞은편에선 로또추첨이나 닭싸움 등 각종 놀음판들이 사뭇 진지하게 열렸다. 모두가 열광하는 밤이었고, 저마다 손에는 새까맣게 탄 바비큐 꼬치와 맥주를 들고 있었다. 한밤중인데도 거리에는 더 이상 차가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축제의 한 가운데 있는 어느 대학가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즐거운 밤이었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바로 앞 유리 창밖으로는 젊은이 무리가 지나가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마음을 홀렸다. 이어폰을 한층 더 깊숙이 귀에 밀어 넣고 잠시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술에 취했는지 분위기에 취했는지 한 남자가 조금씩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남자와 약 3초 정도 눈도 마주쳤다. 눈알은 뻘겋게 충혈 돼있고, 표정은  일그러져 있어 취객쯤으로 생각했다.

다시 코를 노트북에 처박고 작업을 계속하려던 순간, 벌컥 카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창가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앞으로 불쑥 검은 물체가 들어왔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건 다름 아닌 남자가 든 총이었고, 내 몸은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보다니. 너무 놀라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남자는 순식간에 내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뒤에 앉은 태국 유학생의 아이폰을 잽싸게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기다리고 있던 일행의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태국 유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안에서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밖에선 무슨 소동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축제에 들떠있었고, 차량도 다니지 않는 새벽 범인의 야반도주는 너무나 쉬웠다. 곧이어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서로 함께 간 우리는 진술서를 쓰는 데 상당한 공과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범인은 잡지 못했다.

갑작스레 3년도 지난 이 소동이 생각난 이유는, 얼마 전 마닐라 한 커피숍에서 핸드폰을 뺏으려던 괴한에게 총격을 당한 한국인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별처럼 질문이 쏟아진다. 필리핀이 총기소지 허용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냐, 실상 총기사건이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느냐, 택시만 타고 다니기에도 위험한 거 아니냐 등등. 하지만 총기소지 허용 국가라고 해서 모두가 총을 쉽사리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필리핀은 미국에 비교하면 더 엄격한 심사 기준과 절차가 있다. 허가를 받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서류만 해도 10가지가 넘고, 면허가 단계 별로 있기 때문에 소지할 수 있는 개수와 종류도 제한적이다. 면허지속기간도 정해져 있어 그 기간이 지날 때마다 갱신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생각한다면 필리핀이란 국가 자체가 결코 총기 소지에 관대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필리핀 개인 소지 총기수 비교 © News1
미국과 필리핀 개인 소지 총기수 비교 © News1
 

미국의 총 인구수가 3억 1889만 2103명인 데 비해 필리핀 총 인구수는 1억 766만 8231명으로 약 3배가량 차이가 난다. 그러나 위 그래프에서 보듯 개인이 소지한 총기는 미국이 3억 1000만정으로 390만정인 필리핀보다 약 80배 이상 높은 수치에 달한다. 총기 소지에 관한 세계랭킹으로 비교했을 때도 미국이 1위인데 반해 필리핀은 단순 105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리핀은 미국보다 치안이 더 안전하다는 얘기인가? 그건 아니다. 문제는 불법으로 만들어져서 유통되는 총기와 면허 없이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필리핀 정부에 따르면 불법 유통되고 있는 총기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16만750~61만정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어나는 총기 살인 사건을 미국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과 필리핀 내 총기 살인 사건 수 비교 © News1
미국과 필리핀 내 총기 살인 사건 수 비교 © News1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미국에 비해 3배 정도 낮은 인구도 불구하고 총기 사건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필리핀은 총기 사고에 관해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은가의 문제 따위가 아니다. 이렇게 불법적인 총기로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크게 화두가 될 때마다 무턱대고 필리핀을 무법천지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실제 필리핀의 총기 규제와 소지에 관해 알리고 오해를 없애려는 것뿐이다. 물론 여전히 불법 유통되는 총기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주의한다면 사고를 겪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총기 사고가 흔히 생각하듯이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다.

가령, 필리핀에는 각 건물이나 가게마다 법적으로 보안 경비원을 고용하도록 되어있다. 쇼핑몰 같은 다수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문마다 보안요원들이 개인의 가방을 검사하여 총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의 경우를 보아도 그저 동네의 작은 커피숍에서 어수선한 축제 분위기에 안전 보안 요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번 마닐라 총기사건의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보안 요원이 자리를 비웠거나 없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스스로의 안전은 스스로 지킬 필요가 있다. 강도를 만나서 물건이나 돈을 요구할 때, 뺏기지 않으려고 절대 애쓰지 말자. 누구나 알다시피 필리핀은 가난한 나라이므로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순수 ‘금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숨은 소중하니 행여 위험에 처했다면 달라는 물건이나 돈은 무조건 내어주는 것이 안전하다. 필리핀 사람들 사이에도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달라는 것을 주면 절대 총을 발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총기 사건은 피해자가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당하는 사건이다.

꼭 필리핀뿐만 아니라 유독 동남아 쪽 여러 국가가 위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으로 여행 오는 여행자들의 안전 여행을 위해 팁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어두워지면 길거리를 걸어서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좋다.
2. 야시장이나 재래시장 같은 곳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가는 편이 좋고, 꼭 가야한다면 귀중품은 소지하지 않고 관광객처럼 보이는 눈에 띄는 옷차림이나 장신구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3.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지 않는다.
4. 택시를 탈 경우, 문을 열고 기사가 술에 취해 있지는 않는지, 눈이 풀려있지 않은지 등을 먼저 확인한 후 그가 해당 목적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타기 전, 번호판을 핸드폰으로 찍어두는 모습을 보이면 더 안전하다.
5. 클럽이나 바에서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나 술, 음식은 먹지 않는다.
6. 잘 알려진 곳이나 큰 가게나 식당으로 가는 편이 좋다. 각 가게마다 안전요원이 있으므로 택시는 그들에게 불러달라고 부탁한 후, 택시 번호를 적어두라고 부탁한다.
7.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길에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나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주지 않는다. (그 순간 그들은 벌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8. 조금 가까운 거리라도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서희 통신원 © News1

이서희 통신원은 필리핀 세부에 거주하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와 언론사에서 경력을 쌓았을 만큼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이 통신원은 앞으로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생생한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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