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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식품 세계화? 67개 사업단 '절반' 망했다

농식품부 8년간 부실관리의 결과...사업단 60%, R&D 투자 전무
서부충남양돈클러스터가 유일한 성공사례..."망한곳 벤치마킹 결과"

(서울=뉴스1) 이은지 기자 | 2013-09-11 21:59 송고

정부가 8년간 4000억원을 투입한 '지역전략식품산업육성사업'이 부실화된 데는 지역식품육성사업단의 비전문성과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에 그 원인이 있다. '지역식품육성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2005년부터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한 식품산업육성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지금까지 67개 사업단이 선정했다. 이들은 3년간 평균 50억원씩 지원받았다.☞ 관련기사='농식품부, 국민혈세 4000억 날렸다'

뉴스1이 단독 입수한 '광역도단위 식품산업단지 조성 타당성연구(이하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식품육성사업단장의 90%가 교수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조합장들이다. 사업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자리 나눠먹기' 식으로 사업단을 이끌어왔던 것이다.
'한국명품김치산업화사업단'은 사업단장이 무려 4번이나 교체됐다. 무능하다는 게 교체 이유였다. 한국명품김치산업화사업단 관계자는 "처음에 온 교수나 그 다음에 온 세계김치연구소본부장 등은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사업구조를 파악조차 못했다"면서 "그러다가 4번째로 온 단장이 업계 사정을 아는 대표 출신이어서 이제서야 수익사업을 해보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기간은 3년인데 단장 문제로 2년간 허송세월로 보냈다.

농식품부는 이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CEO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전문CEO라도 해도 시장환경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경기막걸리세계화사업단'의 전문CEO인 유병우 사장은 막걸리 문외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막걸리업체들과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 관련기사='오늘우리''숨'막혀…조용히 사장된 '혈세 막걸리'

◇사업단 선정해놓고 9개월후에 지원금 집행
사업단으로 선정되면 6개월 후부터 사업을 개시해야 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사업을 준비하기엔 6개월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용역보고서의 연구책임자인 이정희 중앙대학교 교수는 "사업 준비가 충분히 안됐지만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사업단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업단으로 선정됐지만 사업진행이 제대로 안돼 1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농식품부가 의뢰한 '광역도단위 식품산업단지조성 타당성 연구'© News1 이은지 기자


사업단 지원금이 제때 집행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사업단은 매년초 사업계획서를 농식품부에 제출하지만 농식품부는 8월이 넘어서야 사업계획서를 승인한다. 그러다보니 지원금은 9월에 넘어서 집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경남 통영의 '멍게전략식품사업단' 관계자는 "올해로 3년째 지원받고 있지만 실제 사업기간은 1년 반 밖에 되지 않는다"며 "사업 첫해인 2011년은 9월에 지원금을 받았고, 2012년엔 11월에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도 아직까지 사업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67개 사업단 가운데 57%가 사업단 선정 원년에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업단의 11%는 지원이 모두 끝난 3년 후부터 매출이 발생했다.

정부 관리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사업단 부실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관련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달랑 8명뿐이다. 교수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있지만, 3년간의 지원이 끝난 뒤 추가 예산지원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이뤄지는 평가일 뿐이다. 비리나 문제가 발생한 사업단에 지원금이 계속 집행된 이유도 사후평가만 했기 때문이다.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 2개월 단위로 사업을 평가해 추가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농식품부는 "각 사업단이 소속돼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해주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 운영되는 사업단의 80% 이상이 지자체 주도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자체에게 관리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진배없어 보인다.

◇67개 사업단의 60%는 R&D 투자 '無'

농식품부는 사업을 추진한 지 8년만에야 사업방향이 잘못된 사업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11년에 선정한 13개 사업단 가운데 5개 사업단에 대해 2013년 사업계획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5개 사업단은 '멍게사업단', '부산해양생물산업화사업단', '광주명품김치산업화사업단', '경기북부한돈조합', '친환경농식품클러스터사업단' 등이다. 이들에게 2년간 지원된 돈은 100억원에 이른다.

지역식품육성산업의 핵심은 산학관연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데 있다. 그러나 이 취지에 맞게 사업단을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 정부 승인을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다보니, 서류상으로만 산학관연 관계자들이 등재돼 있다. 정부가 이에 대해 점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이나 연구기관들과 협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역할분담을 하는 사업단은 전무했다. 대부분의 사업단은 지원금으로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매장을 확장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협력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투자한 사업단은 전체의 40%에 불과할 정도다.

'서부충남고품질양돈클러스터' 사업단이 지역 어린이를 소세지 공장으로 초청, 소세지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News1


국내 67개 사업단 가운데 농식품부가 성공사례로 꼽는 곳은 '서부충남고품질양돈클러스터'뿐이다. 이 사업단은 단국대와의 기술개발로 오메가3 사료를 개발한 결과 불포화지방이 많은 돼지 생산에 성공했다. 돼지는 '마블로즈' 브랜드로 직영식당 4곳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올해 2곳을 추가할 계획이다.

윤영우 서부충남고품질양돈클러스터 단장은 "사업단 선정 이후 8개월간 망한 사업단을 돌아다니면서 왜 망했는지를 연구했다"며 "융복합을 통한 새로운 제품개발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 아래 2년동안 연구에 매달려 끝내 특허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이어 "'마블로즈'를 세계적인 돼지 브랜드로 키우고 일본처럼 돼지공원을 만드는 게 목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사업단의 지난해 매출은 120억원, 영업이익 12억원으로 자체 수익으로 운영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교수는 "해외 성공사례를 보면 시설물 설치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연구소와 기업, 지역의 네트워킹 지원, 교육지원, 상품화 지원 등 소프트웨어에 많이 투자한다"며 "국내 사업단도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네트워크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이에 맞는 예산을 지원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l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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