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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개발구역 해제 20여일 앞으로…커져가는 주민 분노

[르포]주민 대부분 서울시 방식 지지
지주-주민간 갈등 심화…'생존권 투쟁' 우려

(서울=뉴스1) 최동순 | 2014-07-18 21:14 송고

9일 기울어진 나무 전신주 아래로 구룡마을 판자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멀리 강남 타워펠리스가 보인다. /사진=최동순 기자 © News1


폭이 1m도 채 되지 않는 골목길을 따라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판잣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시멘트에 나무판자를 덧대어 만든 판잣집 외벽에는 단열재 삼아 걸쳐놓은 마포가 비에 젖어 너덜거렸다.

9일 찾은 구룡마을의 주거 환경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몇몇 집의 외벽은 누르면 누르는 대로 푹 꺼졌다. 몇몇은 흐르는 계곡물에 집 아래 면이 허공에 드러나 있었다. 한 주민은 "매번 장마철마다 집 벽이 심하게 흔들린다"면서 "마을 대부분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집들"이라고 말했다.


잘 지어진 아파트들도 30년이 넘으면 '노후 아파트'로 취급돼 재건축에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다. 마을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지은 구룡마을의 판자집들은 대부분 30년이 넘은 '노후 판잣집'들이다.


◇구룡마을 개발 무산 위기…8월2일까지 결론 내야
/사진=최동순 기자 © News1
하루 빨리 개발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구룡마을의 개발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개발구역 지정기한인 8월2일까지 구룡마을 개발계획안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2012년부터 진행된 구룡마을의 도시개발계획은 전면 백지화된다.
도시개발계획 결정권자인 서울시는 구룡마을을 개발한 뒤 땅이나 건물의 일부를 지주들에게 돌려주는 환지혼용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SH공사의 재정상황과 구룡마을 원주민의 정착 여력을 감안할 때 전면수용방식은 개발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발계획 입안권을 가진 강남구는 소유주로부터 토지를 100% 사들인 다음 개발하는 전면수용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환지혼용방식으로 개발을 할 경우 일부 대토지주들에게 과도한 개발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환지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할 경우 개발 비용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임대아파트의 임대료가 절감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면수용방식으로 개발했을 경우 아파트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5300만원에 월세 35만원선에서 책정되지만 환지혼용방식을 사용하면 평균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9만원의 저렴한 임대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강남구는 이러한 임대료 절감은 법과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법령에 따라 '표준임대보증금'에 맞게 임대료를 산정해야함에도 서울시는 구룡마을에 특혜를 주겠다고 주장한다"면서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내용이며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구룡마을과 초입에 '구룡마을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내집이지 빌려 사는 집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최동순 기자 © News1

구룡마을 주민 대부분은 환지혼용방식을 주장하는 서울시의 입장을 지지했다. 2012년 1월31일 강남구가 서울시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회장 등 마을 주민 1948명은 주민공람에서 환지방식을 통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길 희망했다. 주민공람에 참여한 나머지 76명도 민영개발이냐 공영개발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환지방식 자체에는 동의했다.


주민 대부분이 환지혼용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은 이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할 경우 임대주택 외에도 분양권 취득 등을 논의할 수 있는 협상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12월 강남구청이 환지방식 전면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룡마을 주민들과 서울시는 향후 주민들의 재정착 방식 등에 대해 논의하는 정책협의체를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임대아파트가 아닌 '내집'"이라면서 "토지보상법시행령에 따라 1989년 1월24일 이전의 무허가 건축물은 허가 건축물과 동일한 이주대책 적용대상"이라고 말했다.


또 환지방식의 경우 저비용으로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임대 아파트의 임대료를 절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면수용방식으로 개발했을 경우 아파트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5300만원에 월세 35만원선에서 임대료가 책정된다. 하지만 환지혼용방식을 사용하면 평균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9만원의 저렴한 임대료가 가능하다.


한 마을 주민은 "보통의 강남권 임대아파트 수준으로 임대료가 책정된다면 월 수입 100만원이 안되는 주민들이 무슨 수로 그곳에 입주할 수 있겠냐"면서 "전면수용방식의 개발은 마을 주민들을 모두 쫒아내겠다는 말이나 마찮가지"라고 말했다.


◇지주-주민간 갈등 심화…'생존권 투쟁' 일어나나 구룡마을 개발계획 수립시한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7월2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모습 /사진=안은나 기자 © News1
구룡마을 개발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구룡마을의 생존권 투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토지주와 거주 주민들의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구룡마을의 토지주들은 강남구청을 방문해 구룡마을의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될 경우 자신들의 땅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을 인근 임대주택으로 이주시켜 토지주들이 이 일대를 직접 개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이다.
 
강남 금싸라기 땅의 무허가 주택촌이 뉴타운 광풍 속에서도 강제 철거 당하지 않고 나름의 평화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까닭은 '구룡마을 개발'이라는 지주와 마을 주민의 공동 목표가 있어서다.
지주들과 일종의 계약 관계를 맺은 주민자치회 소속 주민들은 추가적인 무허가 거주민들이나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 세력들이 마을 내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루 3교대 24시간 방범근무를 섰다. 2009년 민영개발 추진과 2012년 도시개발계획 추진도 이같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들의 관계는 지난 2002년 8월 체결된 명의신탁 계약에서 잘 드러난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자신 소유의 토지를 가지고 있어야 주거권을 확보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구룡마을의 토지매입을 추진했다. 대토지주 정모씨는 향후 구룡마을이 개발될 경우 그 이익으로 토지구매 대금을 갚는다는 조건으로 마을주민 224명애게 토지 구입대금 24억6000여만원을 빌려줬다.
 
만약 구룡마을 개발이 무산될 경우 이들의 관계는 적대적으로 변할 수 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크다. 정부가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토지주들이 재산권을 주장하며 강제 철거에 나서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소속 한 주민은 "구룡마을 개발 계획이 해제 수순을 밟으면서 토지주들 사이에서 이제라도 자신들의 재산권을 주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사태가 악화될 경우 용산 참사때 보다 더 끔찍한 '생존권 투쟁'에 내몰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집 마련 여지 있어"vs"주민 권리를 왜 토지주가" 주민들 의견도 분분
구룡마을 개발을 놓고 주민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주민자치회 주민들은 서울시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하게 될 경우 임대주택 외에도 분양권 취득 등을 논의할 수 있는 협상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2012년 12월 강남구청이 환지방식 전면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룡마을 주민들과 서울시는 향후 주민들의 재정착 방식 등에 대해 논의하는 정책협의체를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임대아파트가 아닌 '내집'"이라면서 "토지보상법시행령에 따라 1989년 1월24일 이전의 무허가 건축물은 허가 건축물과 동일한 이주대책 적용대상"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치회 소속의 한 주민은 "보통의 강남권 임대아파트 수준으로 임대료가 책정된다면 월 수입 100만원이 안되는 주민들이 무슨 수로 그곳에 입주할 수 있겠냐"면서 "전면수용방식의 개발은 마을 주민들을 모두 쫒아내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환지 방식은 마을에게 돌아가야할 이익이 일부 토지주들에게 돌아가는 잘못된 개발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또 다른 주민단체 마을자치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토지주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일부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지방식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구룡마을의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영만 마을자치회 회장은 "마을 개발의 이익이 일부 토지주들에게 돌아가는 방식이 주민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면서 "개발 이익을 전부 국가가 환수해 이를 마을 주민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주민 재정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리한 개발 추진에 지친 일부 주민들은 우선적으로 마을 기반시설 정비라도 해줘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주민은 "개발 이야기가 나온 것이 벌써 몇년 전부터인지 모르겠다"면서 "전기나 수도 등 주거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이라도 정부차원에서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구룡마을 개발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1년 5월 100% 토지수용 방식으로 공영개발을 추진하면서 시작됐지만 이듬해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사업비 부담 완화 등을 위해 일부 환지 방식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강남구는 2012년 12월 환지방식 전면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2012년 1월31일 강남구가 서울시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회장 등 마을 주민 1948명은 주민공람에서 환지방식을 통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길 희망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는 "구룡마을 주민 대부분 저소득층이고 노인층이라 개발을 해주겠다는 말에 의례적으로 서명을 한 것뿐"이라며 "대부분의 주민이 수용 방식을 반대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doso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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