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궈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 별세…후진타오 시절 권력 서열 2위

"국유 기업 개혁, 싼샤댐 프로젝트 등 경제 발전 기여 평가"
북한 설득해 6자회담 이끌어 내기도

9일 중국을 국빈방문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과이야기를 나누고있다.(청와대 제공)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시절 권력 서열 2위에 올랐던 우방궈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인대 상무위,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날 부고문을 통해 우 전 위원장이 이날 오전 4시 36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1941년 7월 안후이성 페이둥에서 태어난 우방궈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중국 칭화대학교 무선전자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인 1967년 상하이 전자관3공장 기술원을 시작으로 상하이 전기진공설비공사 부사장, 상하이 계기통신공업국 당위원회 부서기를 역임했다.

신화통신은 "우방궈가 문화대혁명 기간 당의 원칙을 고수하고 실사구시를 실천하며 실제 행동으로 저항했다"고 설명했다.

우방궈 전 위원장은 1983년 3월부터 1991년 3월까지 상하이 당위원회 상무위원 겸 시당위원회 과학기술업무 당위원회 서기와 상하이시 당위원회 부서기를 역임하는 등 상하이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1991년 3월부터 1994년 9월까지는 상하이시 당서기를 역임했다.

그는 1992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1중전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됐다. 신화통신은 "우방궈 동지는 덩샤오핑의 남방담화 정신을 적극 관철하고 푸동 발전과 개방에 관한 당중앙의 중대한 전략적 결정을 단호히 관철하고 경제체제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장쩌민 전 주석 재임 시기인 1994년 9월 중국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중앙서기처 서기에 임명됐으며 이듬해 3월엔 국무원 부총리에 임명됐다.

우 전 위원장은 국유 기업 개혁, 국유기업 퇴직 노동자 재취업, 싼샤댐 프로젝트, 철도 등 인프라 건설을 적극 추진하며 중국 경제 발전 체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2002년 11월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출한 그는 2003년 3월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임명됐다.

우방궈는 생전 한반도 문제에도 적지 않게 관여했다. 우방궈 상무위원장은 지난 2003년 10월 방북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난 바 있다. 그는 후진타오 지도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찾은 지도자다.

당시 우방궈는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해 북한의 제2차 6차회담 참여를 이끌어낸 바 있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