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내부 일부 '신중론'…"전면전 불사하는 보복은 네타냐후 돕는 것"

"이란-서방 관계 개선 막고 확전하려는 것"
'강경파 시간' 길어지나…4월 보복, 사건 12일 만에 진행

1일 이란인들이 테헤란에서 숨진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2024.08.01. ⓒ AFP=뉴스1 ⓒ News1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당한 사건 등을 계기로 이란 정부 전반으로 '암살 주체인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부딪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소수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강경 대응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이 쳐놓은 '덫'에 빠져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잡지 '디 애틀랜틱'은 최근 이란 정부에서 '전쟁의 북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려 퍼졌지만, 정부 한편에서는 '신중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고 전했다.

'신중론'을 설파하는 인사들은 이스라엘의 앞선 공격이 새 정부(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체제에서 이란과 역내 국가들, 이란과 서방 간 관계 개선 시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페제시키안 정권 인수팀'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전략 담당 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역과 세계를 파국 직전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네타냐후의 광기를 비호하는 것을 멈추고 그의 자살적 혼란을 끝내는 데 전 세계가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지금의 분노를 이스라엘 전체가 아닌 네타냐후 총리에게 집중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분리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이다.

이스라엘 전체에 분노를 집중하고, 이스라엘의 하니예 암살에 미국 또한 연계돼 있다고 보는 이란 정권의 공식 대응과는 차이가 있다.

호세인 마라시 전 이란 부통령 또한 자리프 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마라시 전 부통령은 언론에 이란이 암살 사건에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 통치자들이 놓은 함정(덫·trap)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네타냐후가 원하는 전쟁 확전을 돕지 않는 경우에만 그렇다"고 말했다.

하미드레자 데흐가니 전 카타르 주재 이란 대사도 "네타냐후가 가자지구 전쟁을 연장하고 이란 새 정부를 약화시키며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하니예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의 신중하지 않은 대응은 네타냐후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직 외무부 차관 출신의 모하마드 사드르 긴급위원회 위원 또한 "이스라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란이 서둘러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2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에게 승인장을 받은 뒤 연설을 하고 있다. 2024.07.29.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에 대해 개혁주의 일간지(에테마드)와 중도 성향 매체(아스레 이란)가 동의를 표했다.

이 매체들은 "이란이 네타냐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란은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이같이 신중론을 주장하는 온건파의 목소리가 먹혀들진 미지수라고 디 애틀랜틱은 전했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자리프와 그의 측근들의 주장에 대해 강경파는 듣는 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란의 정치 구조는 최고 지도자(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국방·외교·보안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는데, 하메네이는 강경파에 서 있는 인물이다.

컨설턴트는 "하메네이의 집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이날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고 싶지 않다"는 등의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의지는 여전하지만,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피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여기에 '온건파의 의견'이 반영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당장은 '강경파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에 좀 더 무게가 실려 보인다.

이란은 올해 4월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뒤, 사건이 일어난 지 12일 만인 13일 밤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드론을 발사한 바 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2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당선인의 승인장 수여식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4.07.29.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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