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모사드, 테헤란 안방을 뚫었다…이란 정예 혁명수비대의 '굴욕'

하마스 하니예, 이란 숙소에 설치된 폭탄에 살해
내부 '배신자' 도움 받았나…"예견된 실패" 지적도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하니예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언론 접견에 참여할 당시 촬영한 사진. 2019.06.20.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김예슬 기자 = 이란의 '철통' 보안이 숙적 이스라엘에 뚫렸다.

귀빈으로 초대된 하마스 정치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다는 사실도 모자라 그가 묵은 숙소에 무려 2달 전에 설치된 폭탄에 당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란은 '최악의 보안 실패'라는 굴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사건으로 이란의 부실한 정보력과 보안 허점이 가감 없이 드러난 가운데 과거 사례들을 비춰봤을 때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2명의 이란 관리와 5명의 중동 관리, 미국 관리 1명을 인용해 하니예가 그가 머물던 귀빈용 숙소에 밀반입된 폭발물로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NYT 보도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악시오스 등 외신들도 소식통들을 인용해 하니예가 미리 설치된 폭발물에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하니예는 당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테헤란을 방문 중이었다. 그는 행사 다음 날 새벽 2시쯤 암살당했다.

하니예가 머물던 숙소는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운영하고 보호하는 곳으로, 고급 아파트와 외국 대사관이 즐비한 이란 수도 테헤란 북부 자파라니에 지역에 있다.

외신들은 하니예가 숙소 방 안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폭발물도 원격으로 터졌다고 전했다. 악시오스는 "이란 현지에 있던 모사드 요원들이 하니예가 실제로 방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폭발물을 원격으로 터트렸다"고 설명했다.

아직 폭발물이 어떻게 IRGC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설치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초 지난달 31일 사건 직후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던 암살 방법은 외부 폭격이었다.

이란 누르뉴스는 하니예에 거주지에 공중 발사체가 떨어졌다고 보도했으며 레바논 알마야딘 방송은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이 이란 밖에서 발사됐다고 전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미국산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를 투입했거나 공격용 드론을 동원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됐지만 모두 현실성 없다는 지적이 나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니예 암살 사건이 이런 외부 폭격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공작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란은 '재앙적인 보안 실패'라는 비판은 피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하니예는 주로 카타르에 머물렀으나, 이란을 방문할 때면 이번에 폭발이 일어난 숙소에 몇 차례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 철저한 경비가 이뤄졌어야 할 곳에 폭탄이 밀반입되는 치명적인 정보·안보 실패가 일어나면서 이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당혹감이 번지는 모양새다.

20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추락한 바르자간 산악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 2024.05.21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NYT는 암살에 사용된 이 폭발물은 약 2개월 전부터 숨겨져 있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시기상으로 지난 5월 20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시점과 맞물린다.

즉,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란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빠지고 대통령 보궐 선거 준비 등으로 혼란한 틈을 타 모사드가 잠입해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WSJ은 이스라엘이 이란 또는 하마스 내부에서의 도움으로 폭탄을 설치했을 것이라고 봤다.

이스라엘의 군사정보 분석가인 로넨 솔로몬은 WSJ에 "하니예의 측근 또는 이란 측의 배신일 수도 있다"라고 봤다. 또 이번이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하니예의 3번째 이란 방문인 만큼 이스라엘이 그의 움직임을 분석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지난해 11월 하니예의 첫 이란 방문을 두고 "가자전쟁에 누가 연루됐는지 이해하려면 하마스의 살인적인 지도자 중 한명인 하니예의 이란 방문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3일 (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남쪽 케르만에서 발생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 수비대 사령관 4주기 추모식 폭발 현장에 파손된 차량이 보인다. 2024.1.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번 암살 사건이 예견된 보안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이란에서는 올해 초 가셈 솔레이마니 IRGC 쿠드스군 사령관의 추모식 행사 중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폭탄 테러를 일으켜 1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이와 관련해 미국이 비밀리에 이란 정부에 테러 활동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전달했지만 이란이 이를 무시해 방지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당시 안일한 보안 의식으로 사태를 키운 이란이 이후에도 이를 개선하지 못해 하니예가 암살되는 사달이 났다는 지적이다.

한편 악시오스는 이번 사건이 "모사드가 이란 내부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보여준다"라며 모사드의 강력한 첩보력과 전문성에 주목했다.

모사드는 수년간 이란에서 핵 개발과 관련한 인물들을 상대로 암살 작전을 벌여왔고, 이 밖에도 하마스 등 자국을 위협하는 인사들을 무참히 제거해 나갔다.

시리아에 침투해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스파이계의 전설 엘리 코헨 역시 모사드 소속 요원이었다.

데이비드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은 지난 1월 하마스 지도부를 모두 사살하겠다고 공언하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있든 찾아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란인들이 1일 테헤란에서 숨진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2024.08.01 ⓒ AFP=뉴스1 ⓒ News1 김종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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