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으로 '소프트 파워' 잃었다…주변 동맹국 불안 가중

조지아, '외국 대리인법'에 반대 시위 격화
몰도바도 친러 분리주의 지역 침공 우려 커져

지난 9일(현지시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의회 앞에 수천명이 모여 '외국 대리인법' 입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전날(8일) 조지아 여당은 법안 도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옛 소비에트 연방 동맹국들을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러시아가 역내에서 소프트 파워를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지난주 격화한 조지아의 '외국 대리인법' 반대 시위는 푸틴의 처참한 침공이 옛 동구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손상했는지 보여주는 최근의 징후일 뿐"이라고 전했다.

조지아는 최근 언론 통제 법안을 추진하려다 격한 반대 시위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조지아의 집권 여당 '조지아의 꿈'은 외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언론과 비정부기구를 '외국의 영향을 받는 대리 기관'으로 등록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은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 법안이 러시아가 언론 및 반정부 단체를 강제로 폐쇄하는 데 사용하는 법안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원하는 조지아가 이 법안 도입을 통해 러시아식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친 러시아로 돌아서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트빌리시 주립대학 교수이자 조지아 정치연구소 소장인 코넬리 카카치아는 "러시아가 이곳에서 인기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시위대는 이 법의 결과가 무엇인지 조지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러시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고 가디언에 전했다.

카카치아 교수는 "러시아는 소프트 파워를 잃었다"며 "러시아는 더 이상 이웃과 함께 그것(소프트 파워)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들은 단지 잔인한 힘을 사용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25일(현지시간) 국제법상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인 스테파나케르트에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대형 아르메니아 국기를 펼친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남서부에 위치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주도 스테파나케르트를 두고 아르메니아계 분리독립 세력들은 자신들의 '수도'로 주장한다. 이날 수천 명이 모인 시위에서 주민들은 아르메니아로 연결된 유일한 육로가 차단된 데 항의했다. 앞서 지난 23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소련 해체 이후 두 번의 전쟁이 발생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의 긴장 완화를 주문했다. 2022.12.25.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러 면에서 역효과를 낳았다. 옛 소련 국가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국가는 벨라루스가 유일하다. 영토의 일부가 러시아군에 점령된 몰도바와 조지아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다.

조지아는 1990년 자국 영토 내 압하지야·남오세티야가 러시아 지원으로 분리 독립한 이래 반러시아 감정이 만연한 상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협이 가시화하자 개전 며칠 뒤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함께 EU 가입을 신청했다.

이 밖에도 아르메니아에서 몰도바, 카자흐스탄에 이르기까지 동맹국으로 간주되는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역할을 재평가하도록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소련 시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 사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독립국가연합(CSI)을 통해 국경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는데, 최근 중앙아시아 국가 간 국경 문제가 유혈 사태로 번졌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 수비대가 국경 문제를 놓고 충돌했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영토를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도 무력 충돌했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면전에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르메니아가 옛 소련권 군사안보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인데도,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의 공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실망스럽다는 것.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지역 연구 센터장인 리차드 기라고시안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에 압도당하고 있다"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외교 주도권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수도 티라스폴에 걸려있는 몰도바 국기와 러시아 국기.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1년 옛 소련 몰도바에서 사실상 분리 독립해 러시아 지원을 받고 있다. 몰도바 동부와 우크라이나 서남부 접경 지역이다. 몰도바와 국제사회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미승인국으로 지정, 몰도바는 남부 가가우지아와 함께 자국의 자치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2022.05.05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몰도바도 조지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러시아가 몰도바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무력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몰도바에 있는 유럽 정책 및 개혁 연구소의 율리안 그로자는 "지난해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에서 오는 모든 안보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몰도바 등에 통제력을 높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하버드 대학 산하 러시아 및 유라시아 연구 센터의 중앙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인 나르기스 카세노바는 "이런 유독한 상태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우리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잠정 협정)를 찾아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주권을 구축하고 러시아로부터 부분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