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스페인 무적함대를 궤멸시킬 신호탄을 쏘다 [역사&오늘]
4월 19일, 영국 해군의 스페인 카디즈항 급습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87년 4월 19일,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지휘하는 영국 해군은 스페인 카디즈항을 기습해 엄청난 승리를 거뒀다. 이는 영국과 스페인 간 100년 전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으며, 영국의 해상 패권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16세기 유럽에서 동양과의 해상 무역로를 제패한 것은 무적함대(아르마다)를 거느린 스페인이었다.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 바다를 지배해야 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서는 스페인의 해상 패권에 대한 도전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아직 힘이 없었다.
드레이크는 당대의 악명 높은 해적이었다. 하지만 영국 왕실은 왕실 재산보다 많은 전리품을 한꺼번에 갖다 바치는 그가 밉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그를 비호했다. '사략 허가증'을 내주고, 심지어 해군 병력을 지원해 공공연히 해적질을 돕기까지 했다.
드레이크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1580년 9월에는 태평양 칠레 연안에서 금은보화를 싣고 귀환하던 스페인 상선 카카푸에고호를 약탈해 파산 직전의 영국 왕실에 바쳤다. 그는 이 공로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또한, 영국 해군의 중장으로 임명됐다.
1587년 드레이크는 여왕의 명령을 받고 카디즈항을 급습해 스페인 상선 30여 척을 박살 냈다. 스페인은 무적함대에 보급해야 할 대부분의 군수품을 잃고 영국 공격을 위한 함대의 출정을 1년이나 늦춰야 했다. 반면에 영국은 크게 사기가 올랐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150여 척으로 영국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병력 증강을 위해 네덜란드 칼레에 정박했다가 영국 해군의 화공을 받고 대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무적함대는 북해로 도망쳤으나, 귀환 도중 태풍을 만나 50여 척만 귀환했다. 스페인은 제해권에 균열이 생겼고, 영국은 지지 않는 해가 뜰 19세기를 맞을 준비를 시작됐다. 드레이크는 국민 영웅으로 등극, 많은 소년에게 해적에 대한 로망을 심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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