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그리며"…코로나19 추모의 벽 칠하는 英 남편의 소망[통신One]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500m 벽에 그려진 22만여 개 추모 하트
자원봉사자 "소중한 사람 떠나보낸 모든 사람들의 기억 상징"

12일(현지시간) 오후 국립 코로나19 추모의 벽에 하트를 덧칠하는 자원봉사자 테리 샌드웰(68). 그는 지난 2020년 12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해야 했다. @ 조아현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화려한 위용을 뽐내는 영국 국회의사당과 빅벤 건축물 반대편에는 템스강을 따라 펼쳐지는 국립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벽(National Covid Memorial Wall)이 있다. 무려 500m 구간에 걸쳐 조성된 대형 추모 공간이다.

붉은색 하트가 촘촘하게 채워진 거대한 벽면은 멀리서 언뜻 보면 누구나 설렐 법한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를 연상케 한다.

가까이 다가가 벽면에 채워진 하트 문양을 살펴보면 사람 손으로 칠해진 빨간색 페인트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하트 하나하나에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족, 친척, 친구들의 이름과 이들을 그리워하는 추모 메시지가 적혀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립 코로나19 추모의 벽에 칠해진 빨간색 하트들. @ 조아현

이 공간은 규모에 비해 영국 사람들은 물론 런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는 아니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빅벤과 국회의사당에 가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다수의 사람이 이제는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기억이 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추모벽 설치는 지난 2021년 시민단체인 '정의를 위한 코로나19 유가족(Covid-19 Bereaved Families for Justice)'과 정치 캠페인 단체 '당나귀가 이끄는(Led By Donkeys)'에 의해 추진됐다.

국회의사당 바로 맞은편에 수놓아진 22만여개의 하트. 그 안에 새겨진 코로나19 희생자들의 이름은 국가의 위기 대응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상징이기도 하다.

하트 한 개는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한 명을 의미한다. 추모벽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색이 바랜 하트가 되살아나도록 매주 선명한 색깔로 덧칠하고, 낙서를 지우고, 벽에 새겨진 글귀를 다듬는다. 또 같은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는 방문객들이 함께 애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정리하고 관리한다.

추모의 벽과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는 한낱 숫자로 기록된 것이 전부인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기억되게 만든다. 잊혀가는 희생자들이 세상에 존재했었음을 현재에 다시 각인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립 코로나19 추모의 벽에 한 추모객이 "엄마, 영원히 우리 마음 속에"라는 문구를 써 놓았다. @ 조아현

이날 추모의 벽에서는 자원봉사자 테리 샌드웰(68)이 빨간색 페인트로 하트를 칠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추모의 벽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샌드웰은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인 12월 26일에 아내를 떠나보냈다.

그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코로나19로 인해 사별한 아내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추모 벽의 의미는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잊지 않는 것'이라 했다.

샌드웰은 "나에겐 아내를 잃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내만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라며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 코로나 추모벽을 지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희생자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숨 쉬도록 만들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어 "지난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추모벽이 설치된 지 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그날은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추모벽이 가진 의미에 대해 묻자 "이 벽은 코로나로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낸 모든 사람의 기억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분들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는 것과 우리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살아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딸과 함께 추모벽을 따라 글귀를 읽어보던 한 중년 여성은 "충격적"이라면서 놀라워했다. 그는 "코로나 희생자들을 숫자로만 대충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 장소에서 본다는 것은 아주 충격적이고 슬픈 광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추모 공간이 나에게 더욱 와닿는다"고 했다.

또 다른 영국인 중년 관람객은 코로나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했다.

미셸은 "너무 슬프다"면서 "코로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런던에 살고 있지만 여기에 이런 추모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고 덧붙였다.

미셸과 함께 추모의 벽을 관람한 케빈은 "추모벽을 아무도 훼손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이는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런던에서는 드문 일"이라고 했다.

2022년 7월에 발표된 영국 통계청(ONS) 데이터에 따르면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지난 2020년 7만3766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고, 2021년에는 6만7350명이 숨졌다.

스코틀랜드 국가기록원(NRS) 자료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는 2020년 기준 1만2751명, 2021년 1만 651명으로 집계됐다.

북아일랜드 통계 및 연구기관(NISRA)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북아일랜드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401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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