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대관식' 직후 안방서 테러…리더십 흠집 푸틴, 우크라 정조준하나

20년만에 발생한 최악의 참사…푸틴, '안보 구멍' 자초
전쟁에 몰두하며 美 경고 무시…우크라, 희생양 될 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노보 오가르요모 관저에 있는 교회에서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총격·방화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가 애도의 날을 맞아 촛불을 켜고 있다. 2024. 3. 25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21세기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안방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로 시험대에 올랐다.

1990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의 과도기적 혼란을 잠재운 성과와 '강한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선포로 강력한 지지기반을 확보해 권위주의적 장기 집권을 정당화한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 이번 사건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2년 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러시아의 안보 불안이 이번 사건으로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이제 막 5선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이 국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정조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24일(현지시간) CNN과 NBC 뉴스, 모스크바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2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의 크로커스 시티홀에서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한 테러 공격으로 137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민간인 330여명이 사망한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20년 만의 최악 테러 사건으로 꼽힌다.

특히 이번 참사는 지난 15~17일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이 87%가 넘는 역대 최대 득표율로 5선에 성공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발생했다.

이때문에 2000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부터 줄곧 '강한 러시아'를 표방한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구조대원들이 137명이 사망하는 테러 공격이 발생한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화재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2024.03.24/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소련 해체 이후 혼란기를 겪던 러시아 국민은 '안전한 러시아'를 약속한 푸틴 대통령에게 기꺼이 표를 내줬고, 푸틴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자유를 억압하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왔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 당시에도 러시아의 안보를 위한 전쟁이라고 정당화했으며 대규모 동원령과 그에 따른 시위,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등 악재에도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쟁의 공포에서 빗겨난 것으로 인식되던 모스크바에 이런 대참사가 보란 듯이 발생하면서 '안보 전문가'를 자처한 푸틴 대통령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CNN은 "오늘날 러시아는 그의 집권 기간 중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라며 "이는 러시아인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것과 크게 다른 상황이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미국이 테러 가능성을 사전에 입수해 러시아 측에 전달했지만 러시아 당국이 이를 무시했다고 알려지면서 푸틴 대통령이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존 로프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연구원은 "이번 일은 푸틴 대통령에게 유리하지는 않다"라며 "엘리트층에서도 실제로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 다른 위험이 있는데 왜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 모든 수사가 있었던 것이냐고 반문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망명한 전 러시아 석유 재벌 미하일 코로도코프스키는 엑스(X·옛 트위터)에 이번 테러와 관련해 "경찰국가의 완전한 실패"라고 비난했다.

옥중 의문사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인 이반 즈다노프도 "우리는 수십년간 안보를 위해 권리가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들어 왔다"라며 "하지만 테러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보안 당국은 본연의 일이 아닌 것들에 몰두해 있다"고 지적했다.

24일(현지시간) 137명이 숨진 테러 공격이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앞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헌화가 가득 쌓여있다. 2024.03.24/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한편 이번 사건으로 리더십을 시험받는 푸틴 대통령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또다시 우크라이나를 제물로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테러에 가담한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붙잡혔다며 이들이 우크라이나의 도움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 미디어 센터는 모스크바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러시아 내 선전원들은 미국과 서방을 비난하거나 혹은 우크라이나 특히 키릴로 부다노프 국방부 정보국장이 배후에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테러 공격에 연루됐다는 어떠한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분석가 키어 자일스는 러시아 측 주장이 "꾸며낸 이야기(fairy story)"라며 "이는 동원령을 확대하고 (전쟁에) 필요한 인력을 모으기 위한 구실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IS는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조직원들이 이번 공격을 저질렀다며 당시 현장의 참담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jaeha6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