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시위·모나리자 수프 테러…유럽 농민들은 왜 분노했나
EU 농민들, 자연복원법에 따라 엄격한 환경 규제 적용
유럽의회 선거·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 협정 앞두고 진통
-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예술이 중요한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량에 대한 권리가 중요한가?"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두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에 수프를 끼얹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환경단체 소속의 운동가들로, 프랑스의 농업정책에 불만을 품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유럽 시내 곳곳엔 트랙터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등 도심 지역 도로는 자국 농업의 보호를 요구하는 농민들로 가득 찼으며, 교통혼잡이나 방화 등 격렬한 충돌을 빚기도 했다.
유럽연합(EU) 국가마다 농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인 배경에는 EU의 환경 규제책과 메르코수르와의 자유무역 협정 체결이 있다.
EU의 농민들은 지난해 7월 통과된 자연복원법에 따라 엄격한 환경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자연복원법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EU의 '그린딜 계획' 중 하나다. 생물 다양성 복원을 목표로 삼림 지역과 해양 서식지를 늘려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라 EU는 2030년까지 농지를 10% 감축하고 살충제 사용량을 50% 감량해야 한다. 환경 규제 기준을 맞추다 보면 EU산 농산물은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
여기에 유럽의회는 남미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와 무역 협정 체결까지 추진하고 있다. 메르코수르와의 자유무역협정은 2019년 원칙적으로 합의된 상태이지만 EU 회원국들은 메르코수르 내 환경 문제를 거론하며 환경 보호 관련 요구를 추가해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 농민들은 우크라이나 등 환경 규제가 덜한 기존 역외 국가에서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고 있었는데, 남미산 농산물까지 들어오게 되면 불공정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프랑스 정부는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마크롱 정부는 농업용 연료에 대한 국가보조금을 줄이겠다는 기존의 계획을 철회하고, EU보다 더 강한 살충제 규정은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도 계속 반대하겠다며 의지를 재확인했다.
EU 또한 거센 반발에 몇 가지 보완책을 마련했다. 이들은 가금류 등 역내 생산 품목의 가격이 일정 선을 넘으면 수입품에 대한 면세를 중단하는 긴급 브레이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전체 농지의 4%를 휴경해야 하는 EU 농민들의 의무 사항을 올해까지 면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프랑스 농업 노조는 오는 2월 말 주요 농업 박람회가 열릴 때까지 약속에 따른 선제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새로운 시위가 재개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독일도 농업용 차량 자동차세와 농업용 경유 세금 감면에 대한 보조금 삭감을 강행해 여전히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이외에도 프랑스부터 시작된 시위의 불씨가 불가리아나 벨기에,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오는 6월에는 현 유럽의회의 임기가 종료되는데, 의회는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메르코수르와의 협정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여기에 각국의 보수 세력은 다음 선거를 노리며 EU의 환경 규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서 최근 유럽의회 선거와 관련해 진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5개국 중 폴란드를 제외한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는 보수 정당이 선거에서 우세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난해보다 6%포인트(p) 오른 17%의 득표율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됐다. 이들은 판세 굳히기를 위해 농민을 지지하고 환경 규제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 당분간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topy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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