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한인 입양아들, 국제 입양인 위한 NGO 설립[통신One]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이제 와 생각하니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것은 입양 트라우마였습니다. 그것을 알기 전과 알게 된 후로 저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976년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유근씨는 기억을 더듬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1973년 한국에서 태어난 유근씨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네덜란드 쯔볼레 근교의 농부의 가정에 입양됐다. 유근씨가 기억하는 네덜란드에서의 유년 시절은 행복하고 온화했다. 유근씨는 학창 시절 성적도 훌륭했고, 또래와 잘 어울렸다.
유근씨가 입양된 양부모의 가정에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국제 사업을 시작한 뒤에는 사회적인 성공을 거뒀. 하지만 그는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가족과 뿌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수차례 방황 끝에 그가 찾은 곳은 '아리랑'이라는 네덜란드 내 한국계 입양아들의 모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서서히 방황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유근씨는 한국에 방문했고, 운 좋게 친 부모님과 가족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이혼 후 연락이 끊긴 친 어머니는 유근씨의 해외입양 사실을 몰랐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만난 친아버지와는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평생을 네덜란드인들 틈에서 조금 다른 외모로 자라왔던 그에게 한국에서의 시간은 고향에 다시 돌아온 듯 평온함을 줬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국제 입양아들의 삶에 대해 고민했다. 국제 입양은 입양 당사자에게서 끝나는 고통이 아니라 온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유근씨에게 더 이상 돈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했다. 그는 본인이 고통받았던 입양 트라우마에 대해 연구하고 국제 입양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도움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입양인들과 네덜란드 정부에서 인증하는 비영리단체 아답티 서클(Adoptie Cirkel)을 만들고 네덜란드의 하우튼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첫 론칭 행사를 열었다.
아답티 서클은 단순히 친부모를 찾는 것에 도움을 주는 여타의 입양인 관련 기관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유근씨와 함께 단체를 설립한 입양인들은 입양인들이 트라우마를 인지하지 못한 채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 공통적으로 주목했다. 이에 따라 아답티 서클에서는 심리 상담, 트라우마 치료, 대인관계 코칭 및 직업 코칭 등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한인 입양인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네덜란드 내의 국제 입양인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체다.
"우리 입양인들은 강제적으로 네덜란드로 보내졌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또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네덜란드인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각자의 어린 모습을 다독이고 돌보는 과정이 있어야만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입양된 한인 입양아 중 1세대인 유근씨는 입양인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네덜란드 입양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에는 4000여 명 정도의 한국계 입양인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마이 루트 재단에 따르면 1971년에서 1980년 사이에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은 아이가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chahjlisa@gmail.com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