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제2 우크라' 되나…"조지아 사태, 러 우크라 침공 방식과 유사"
외교 전문 싱크탱크 ECFR "푸틴의 단일 제국주의적 프로젝트 일환"
정부의 '친러' 노선 중심에 現여당 설립자 이바니슈빌리 前총리 지목
-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최근 조지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의회를 장악한 여당 '조지아의꿈'이 추진하는 외국 대리인법에 대한 시민사회 분노가 거세다. 서방 제도권으로 진입을 바라는 대다수 조지아인의 '꿈'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도 트빌리시 중심가에서 연일 시위대와 경찰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조지아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외교 전문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는 "2014년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언급하며 조지아 상황이 우크라이나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2008년 러시아 대통령 재임 당시 조지아 전쟁을 지휘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011년에 '러시아가 당시 조지아를 침공하지 않았으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조지아로 확장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조지아는 2003년 장미혁명 이후 친서방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러시아는 옛 소련국인 조지아가 서방에 편입되는 것을 잔뜩 견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래 조지아와 영토 분쟁 중이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물밑 지원하면서 분리 독립을 부추겼고 결국 조지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나흘 만의 압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남오세티야·압하지야는 독립국으로 러시아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이는 러시아가 2014년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도했던 방식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2013년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도 키이우와 서부를 중심으로 11월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반민주·반독재 운동인 '유로마이단 혁명'의 시초가 됐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도 친서방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2월 유로마이단의 승리로 친러 정권이 무너지고 친서방 과도정부가 수립됐는데 러시아는 또 한번 위기감을 느꼈다.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 중에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크름반도)를 강제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 세력을 꾸준히 지원하면서 정부군과 내전을 조장했고 이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발단이 됐다.
ECFR는 "2008년 조지아 침공은 며칠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014년과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야기한 '영토회복주의적(revanchist) 야망'과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전쟁은 '단일 제국주의적 프로젝트'(a single imperial project)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ECFR은 현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유럽연합(EU)·나토 가입 희망을 명기한 헌법을 져버리고 친러시아 노선으로 갈아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특히 최근 18개월 동안 조지아의 집권 연합은 서방으로부터 나라를 멀리하고 점진적으로 러시아 영향권으로 전환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움직임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같은 친러시아 노선의 핵심 인물로 기업가 출신으로 조지아꿈 설립자인 비지나 이바니슈빌리 전 총리를 지목했다.
보고서는 "이번 사태가 EU에서 멀어지게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집권 연합을 지배하고 있는 조지아꿈의 올리가르히(과두정치인)이자 전 총리인 비지나 이바니슈빌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ECFR에 따르면 이바니슈빌리는 시장경제로의 격동적 전환기에 러시아에 머물며 무수한 돈을 벌어들였으며 1996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재선을 지지했던 영향력 있는 러시아 은행가 그룹의 일원이었다.
이바니슈빌리는 2012년 친서방의 미하일 사카슈빌리에게 대항하기 위해 조지아꿈을 창당하고 그해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총리로 선출됐다. 포브스 순위에 따르면 그는 현재도 세계 500대 부호 명단에 올라있으며 국내 재산 서열은 명실상부한 1위다.
외국 대리인법이 통과되면 EU·나토 가입이 무산될 거라는 시민사회의 격한 반응에도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조지아꿈은 바로 그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듬뿍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총리는 개전 이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대러 제재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그 어떤 것도 거부하고 있다.
서방이 조지아가 친러시아, 권위주의적 정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U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해당 법안이 조지아의 EU 가입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EU의 가치와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우리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 초안에 투표하는 사람은 누구나" 조지아와 유럽 및 서방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조지아꿈은 이날 시민 저항에 항복하고 강행 처리하려던 외국 대리인법을 폐기했다. 성명을 통해 "아무런 유보 없이 외국 대리인법을 무조건적으로 철회한다"며 "사회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꼽았다.
이로써 조지아의 러시아로의 회귀가 일단은 수면 아래로 들아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몰도바의 지정학적 위치,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야욕 등과 맞물려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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