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이영표의 골 때리는 축구사랑

이영표 축구해설위원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이영표는 이미지가 좋은 축구인이다. 축구를 영리하게 잘했고 말도 초롱초롱 딱 부러졌고 은퇴 후 봉사로 예능으로 마라톤으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다.

이영표는 영향력이 큰 축구인이다. 믿음직한 축구인이 건실하게 행동하고 필요할 때마다 좋은 방향성을 제시하니 따르는 동료들도 많았고 팬들도 신뢰를 보냈다.

그래서 이번 발언은 너무 실망스럽다.

새로운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을 향한 비난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렇게 형편없는 헛발질이 있을까 싶은 대한축구협회 일처리 탓이다. 더 실망할 게 있을까 싶었는데, 또 지하로 내려갔다.

축구팬들을 기만했고 대한민국 축구사를 빛낸 레전드 황선홍과 홍명보를 바보로 만들었으며 다른 국내 지도자들은 '대표팀 감독 후보'로 언급될 수 조차 없는 자격 미달로 만들었다. 가뜩이나 사람 없다는 축구판인데 있는 재산도 아낄 줄 모른다.

A매치 1~2경기 이기면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저렇게 알고 있는 티를 내면 안 된다. 무서운 줄 모르는 집단이다. 추락은 순식간이다. 완만한 그래프가 아니다. 아찔한 채찍을 들어야하는데, 축구가 워낙 재밌는 콘텐츠니 까먹고 다시 박수쳐주는 팬들 탓을 할 수는 없다. 타격감이 사라진 대한축구협회의 문제다.

그런 축구협회의 행정력을 아프게 질타한 이영표의 쓴소리는 마땅했다. 그는 이번 대표팀 사령탑 선임 과정을 지켜본 뒤 "협회를 믿고 기다려보자라는 입장이었는데,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다 동의할 수는 없다.

다양한 형태로 축구협회의 행정과 그렇게 결정된 인물을 비난하던 그는 "축구협회가 세계적인 명장 위르겐 클롭급 지도자를 데려올 수도 있다"던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팬들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사과 내용은 "내가 파악하기로는 정상급 감독과 접촉했고 영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팬들이 만족할 만한 감독을 모셔오지 못한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팬들의 환호성이 컸다.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실망스럽다. 축구 전문가가, 대한민국의 축구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대중들이 큰 신뢰를 보내고 있는 축구인이 이렇게 말해서는 안됐다.

'클롭'이라는 이름을 '좋은 지도자'의 대명사처럼 언급하려다 과장된 것이라 변명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클롭을 언급하면서 사비와 베니테즈라는 설레는 지도자도 덧붙여졌지만, 차치한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그런 유명한 지도자를 모셔올 수 없다는 것을 축구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확대해 축구를 꽤 알고 좋아하는 팬들은 알고 있다.

20억원 정도를 내밀면서 명장을 데려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략 밝혀진 리버풀에서 쿨롭이 받은 연봉만 언급한 숫자의 10배가 넘는다.

물론 선택할 때 돈보다 앞서는 가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축구대표팀은, 그렇게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다. 아시아에서도 3~5위하는 실력인데 월드컵 16강에 오르지 못하면 뭇매를 맞아야하는 역할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사명감을 갖고 지휘봉을 잡긴 힘든 팀이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100억원 이상 내면서, 세계적인 인맥으로 클롭급 감독을 모셔오는 것에 일조하겠다고 할 수 없다면 입에 머금고 있었어야 했다. 이영표가 이미지 좋고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 그렇다. 축구팬들은 일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안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또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도 전에 이렇게 조롱받을 인물은 아니다. 적어도 그는 축구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때도, 만신창이가 되도록 욕먹을 때도 축구 현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