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으로 버려진 354일, '분노 유발 웃음'만 남기고 떠나는 클린스만
정몽규 회장 "선수관리, 근무태도 모두 문제였다"
- 이재상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지난해 2월말 한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성적 부진과 각종 논란 속에 불명예스럽게 경질됐다. 대략 1년 만에 쫓겨나는 것인데, 남은 건 팬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웃음' 뿐이다.
대한축구협회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정몽규 회장을 포함한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27일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발표한 지 정확히 354일 만이다.
전날(15일) 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돌아보며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뜻을 모았다. 장시간의 회의를 진행한 끝에 클린스만 감독으로는 더 이상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황보관 기술본부장은 "위원회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더는 대표팀 감독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전력강화위원회의 건의를 접수한 정 회장은 이튿날 곧바로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고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결정했다.
정 회장은 임원회의 후 "아시안컵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으로 축구팬 국민들에게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다"면서 "협회는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운영, 선수 관리, 근무 태도 등 우리가 기대하는 지도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직접 발표했다.
◇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 하지만 지도자로는 낙제점
대한축구협회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마친 뒤 파울루 벤투 감독 후임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까지 4년이었다.
'빅네임' 클린스만이 한국 대표팀을 이끌 새 지도자로 선임되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나타냈다. 선수로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꼽힌 클린스만이지만 지도자로 거둔 성과는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06 독일 월드컵 3위를 달성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으나 이후에는 줄곧 '실패'에 가까운 성과를 냈다.
2008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은 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 탈락과 리그 2위의 성적에 그쳤다. 특히 당시 뮌헨에서 뛰었던 필립 람은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적 지시가 거의 없었다. 체력 훈련만 했다"고 폭로해 논란이 됐다.
이후 클린스만 감독은 2011년 미국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이 최고 성과였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부진이 길어지자 경질됐다.
특히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독일) 사령탑을 맡았을 때는 10주 만에 인터넷을 통해 감독직을 그만두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가 한국 지휘봉을 잡는다고 했을 당시 독일 언론에서는 KFA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꼬았다.
◇ 1년간 퇴보한 한국 축구, 대표팀 내분까지 '새드 엔딩'
벤투 감독 시절 전방 압박과 빌드업 축구를 펼치며 호평받았던 한국은 클린스만 감독 이후 퇴보했다. 클린스만 자신은 '공격 축구'를 선언했으나 이렇다 할 전술은 없었고,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생제르맹) 등 선수 개인기에 의존하는 축구만 펼쳤다.
지난해 3월 콜롬비아전(2-2 무)을 통해 출항한 클린스만호는 이후 5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출발부터 삐걱댔다. 협회가 1992년 A대표팀 전임 감독제를 도입한 뒤 부임 후 5경기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한 사령탑은 클린스만 감독이 최초였다.
좀처럼 승리를 수확하지 못하며 '무색무취'에 가까운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력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흥민아) 해줘 축구'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잠시 좋았던 시기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영국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기며 6경기 만에 첫 승을 수확한 클린스만호는 아시안컵 전까지 6연승을 거두며 64년 만의 대회 우승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아시안컵이 막을 올리자 대표팀은 기대 이하였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바레인에 3-1로 승리한 한국은 이후 요르단(2-2 무), 말레이시아(3-3 무)에 고전하며 조 2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16강 사우디전 승부차기, 8강 호주전 연장 승리로 힘겹게 4강에 올랐으나 요르단을 상대로 유효 슈팅 1개도 때리지 못하는 졸전 끝에 0-2로 완패했다.
태극전사들은 6경기에서 10골을 내주는 최악의 경기력으로 64년 만의 우승 도전 기회를 날렸다. 공격진의 호흡은 맞지 않았고 특히 요르단전을 앞두고는 손흥민과 이강인이 몸싸움을 벌이는 등 내분까지 벌어진 것이 드러났다.
◇ 잇따른 외유 논란, 패배에도 웃기만 했던 클린스만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외적으로도 이미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한국 정서와 동떨어진 독불장군식 행동을 반복했다.
먼저 그는 한국 거주 약속을 어기고 미국과 해외 등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외유 논란이 나왔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서 ESPN 등의 패널로 더 자주 등장했다. 심지어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도 미국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대표팀 감독은 클럽과 다르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다양한 시야가 필요하다. 근무 형태를 바꿀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작년 유럽 원정 당시에는 웨일스전을 마치고 아들을 주기 위해 상대 주장이었던 애런 램지의 유니폼을 얻었던 것도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스마일맨'인 클린스만 감독은 특히 아시안컵 기간 중 부진 속에도 계속 웃기만 해 뭇매를 맞았다.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먹은 뒤에도 그는 얼굴에 미소 짓고 있었고, 4강 요르단전 완패에도 환하게 웃어 팬들의 공분을 샀다.
아시안컵을 마치고 귀국 당시에도 안 좋은 여론을 개의치 않는 듯 손을 흔들며 마치 개선장군과 같은 태도로 분노를 자아냈다.
15일 진행된 전력강화위원회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의 각종 행태에 대한 차가운 비판이 쏟아졌다. 황보관 본부장은 "국내 근무가 적은 근무 태도에 대해서 한국 국민을 무시하는 것 같다. 본인이 한 약속을 계속 어기면서 신의 회복이 어렵다는 평가였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스포츠인 축구에서 대표팀 감독은 내용과 결과가 이슈가 되어왔는데 근무 태도가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클린스만 감독은 매너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몽규 KFA 회장의 공식 발표가 있기 1시간 전, 클린스만은 자신의 SNS 먼저 사실상의 작별 인사를 남겼다. 축구협회 수장의 공식 발표 없이 클린스만 감독의 작별 '선통보'로 인해 브리핑은 맥 빠진 모양새가 됐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던 클린스만이다.
alexe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