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더 낮게' 류현진, 'ABS 존 불만 표출' 이후 첫 등판서 웃었다
아웃카운트 18개 중 12개가 땅볼…구석 찌르는 제구 위력
볼 판정도 짜증 대신 웃음으로…위기 관리 능력도 돋보여
- 권혁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던 류현진(37·한화 이글스)이 다음 등판에서 활짝 웃었다. 이번에도 볼 판정에 100%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노련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공을 던졌다.
류현진은 4월3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103구를 던지면서 7피안타 2볼넷 1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한화의 8-2 승리를 이끌었다.
타선의 화끈한 지원을 받은 류현진은 시즌 2승(3패)과 함께 개인 통산 100번째 승리(55패)를 거뒀다.
100승 도전과 추신수, 최정과의 맞대결이라는 상징도 있었지만, 이날 류현진의 등판엔 또 다른 이유로 관심이 쏠렸다.
그는 직전 등판이던 지난달 24일 KT 위즈전에서 5이닝 7실점(5자책)으로 흔들리며 패전투수가 됐다. 한화 내야의 잇따른 수비 실책이 커 보였는데, 그는 다음날 "거의 같은 높이였는데 어떤 공은 볼이고, 어떤 공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며 ABS 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투구 추적 데이터를 공개하며 존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고, 류현진은 더 이상 대응하진 않았다.
ABS 존의 도입으로 판정 논란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팬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고, 류현진도 '느낌'만으로 더 이상의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5일을 쉬고 등판한 경기가 바로 SSG전이었다. 류현진이 또다시 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이번에도 어려운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역시나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였다. 경기장 밖에선 불만을 제기할지언정, 안에서는 경기 자체에만 집중하려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선 팀 홈런 1위인 SSG 선수들의 장타를 의식한 듯 낮게 제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공략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류현진은 이날 6회까지 아웃카운트 18개를 잡으면서 3분의 2인 12개(병살타 1개 포함)를 땅볼로 처리했다. 류현진의 주무기인 체인지업뿐 아니라 커터, 커브, 직구 등 모든 구종을 낮은 코스에 꽂아넣은 것이 유효했다.
이런 가운데 한유섬에게만은 다른 공략법이 적용됐다. 한유섬은 신장이 190㎝에 달하지만, '기마 자세'에 가까운 낮은 타격 자세를 가지고 있다. ABS 존은 타격 자세가 아닌 신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한유섬에겐 높은 코스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류현진은 이를 간파한 듯, 한유섬의 몸쪽 높은 코스에 공을 던져 여러 차례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한유섬은 움찔 놀라며 타석을 벗어났지만 심판의 손은 올라갔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느 때보다 '칼날 제구'가 돋보인 경기였지만, 그럼에도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2회엔 수비 실책을 빌미로, 4회에도 연속 안타로 위기를 초래한 뒤 실점하는 등 불안한 모습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KT전과 달랐던 점은,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KT전에서 수비 실책과 더불어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불만을 품으면서 투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3회에 3점, 4회에 4점을 내주는 것은 분명 류현진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도 류현진의 생각과 다른 스트라이크 콜이 몇 차례 나왔지만, 이번엔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흔들지 않았다.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긴 했지만 웃음을 보이며 다음 공을 기약했고, 타자와의 승부에만 집중했다.
37세의 류현진에게 더 이상 20대 당시의 완전무결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노련한 경기 운영과 위기관리 능력, 절묘한 제구는 여전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무엇보다 앞선 경기에서의 아쉬움을 완벽히 떨쳐내고 동요 없이 자신의 공을 던졌다. 류현진은 확실히 그다운 경기력으로 100번째 승리를 쟁취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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