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박병호·김하성 이어 이정후…'부자' 아니지만 배부른 키움

모기업 없이 선수 발굴·육성 시스템 속 '슈퍼스타' 줄이어
"선수 팔아 연명" 비난도 있지만…빅리거 4명 배출 자부심

10월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키움 이정후가 8회말 1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대타로 타석에 나서며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정후는 메이져리그 진출 전 마지막 고척돔 홈경기에 경기에 나서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키움 제공)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에 이어 이정후까지. 키움 히어로즈가 벌써 4명째 '빅리거'를 배출했다. KBO리그에서 재정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가난한' 구단으로 꼽히지만, 선수 발굴과 육성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에 배가 부르다.

지난 13일(한국시간) 미국 현지 매체들은 일제히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계약 기간 6년에 계약 총액 1억1300만달러(약 1484만달러)이고, 4시즌이 끝난 뒤 옵트아웃(계약 파기 후 FA 신분이 되는 것)이 되는 조건도 달렸다.

이정후는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한국 선수 중 최고 몸값을 받았다. 이번 계약을 통해 키움이 받을 이적료는 1882만5000달러(약 247억원)다.

키움이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것은 2015년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 2016년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 2021년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이어 벌써 네 번째다.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의 박병호. ⓒ AFP=뉴스1

네 번 모두 '완전 FA'가 되기 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내보냈기에 매번 이적료도 챙겼다.

강정호가 이적했던 2015년엔 500만2015달러를 받았고, 이듬해 박병호가 이적할 땐 1285만달러, 2021년 김하성의 이적료로는 552만5000달러를 받았다. 이번엔 1억달러가 넘는 계약이 나오면서 이적료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빅리거를 배출할 때마다 키움이 받는 이적료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키움의 구단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

키움은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모기업을 대기업으로 두고 있지 않은 구단이다. 다른 구단은 대형 기업의 자기업으로 모기업의 이름을 구단명으로 사용하는 반면, 키움은 '히어로즈' 구단 자체가 하나의 단일 사업체다. 구단명인 키움은 후원기업으로, '네이밍 스폰서' 개념이다.

모기업이 마음 먹고 지갑을 열면 대형 FA를 사들일 수 있는 다른 구단과 달리 키움은 마음껏 돈을 쓸 수 없는 배경이다. 지난해 박동원, 올해 최원태를 FA에 앞서 트레이드로 내보낸 것 또한 '운영'의 일환이다. FA가 되면 높아지는 몸값을 감당할 수 없기에 가치가 높을 때 타 팀의 유망주 혹은 신인 지명권, 현금 등과 교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빅리거를 배출하면서 받는 이적료는 키움에겐 운영의 숨통을 틔워주는 중요한 자금줄이다. 류현진을 이적시키면서 받은 이적료로 여러 FA를 잡았던 한화 이글스와는 사정이 다르다.

키움의 운영 방식은 메이저리그 '스몰 마켓' 팀들과도 비슷하다. 큰 돈을 쓸 수 없는 팀들은 신인급 선수들을 성장시킨 뒤 이들을 매물로 새로운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적기'가 왔다고 판단이 되면 모았던 '쌈짓돈'을 풀어 승부수를 던지는 방식으로 성적을 낸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AFP=뉴스1

키움은 올해 최하위에 그치긴 했으나,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등 꾸준하게 성적을 내온 팀이었다. 2019년과 2022년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선전했다.

슈퍼스타가 이탈하지만 그 자리를 메우는 선수가 꾸준히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강정호가 빠졌을 땐 김하성이 그 자리를 메웠고, 김하성의 빈 자리는 김혜성이 대신했다. 홈런왕 박병호가 빠진 자리는 쉽게 채우지 못했지만 최우수선수(MVP)가 된 이정후가 그 못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정후가 빠지는 내년 시즌, 키움은 여전히 약체에 가깝지만 이미 대비책은 마련해놨다.

최원태를 트레이드하면서 LG의 유망주 이주형을 받아온 것. 이주형은 이정후가 부상 당한 이후 중견수 자리를 커버함 69경기에서 0.326의 타율과 6홈런 36타점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풀타임을 소화할 내년 시즌은 더욱 기대되는 그다.

키움은 내년 시즌이 끝난 후에도 김혜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후에도 에이스 안우진이 해외로 떠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차기 빅리거로 꼽히는 김혜성. /뉴스1 DB ⓒ News1 박지혜 기자

이같은 운영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구단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선수 장사'로 연명한다는 비난이다. 팬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운영 방법의 하나다. 제정 상황 등을 고려해 팀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고, 앞서 언급했듯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하게 통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올해를 제외하고는 성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돈을 많이 쓰고 성적이 안 나오는 구단보다 효율적인 구단 운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키움에서만 빅리거가 4명째 나왔다는 것은 구단의 선수 보는 눈과 육성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작정 지갑을 열어 우승을 노리는 타 구단들이 쉽게 지나쳐선 안 되는 지점이다.

starbury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