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동료로 인정 못받는 한국 간호사들 안타까워…간호법 꼭 통과돼야"
[인터뷰] 김경희 재외한인간호사회 총회장
"24시간 환자 누가 돌보나…간호법은 간호사 아닌 국민 위한 법"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친절하게 주사 잘 놓고 하면 환자들이 꼭 물어봐요. '차이니즈? 필리피노? 제페니즈?' 그럼 전 당당하게 '코리안!'이라고 말해요. 대한민국을 좋은 이미지로 알리는 홍보대사가 바로 간호사죠."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행사장이 캐리어를 하나씩 든 180여 명의 여성들로 북적였다. 북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4개 대륙에서 고국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 왔다고 했다. 미국, 노르웨이, 핀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재외 한인 간호사들이다.
이날 만난 김희경재외한인간호사회 총회장은 "각국에 간호사들이 모여 만든 협회가 20개 있고 재외한인간호사회가 이 협회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오늘 소속 간호사들이 모인 것"이라며 "4년마다 한 번씩 서울에서 재외한인간호사대회를 열고 있고, 올해는 특별히 대한간호협회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해외 한인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간호사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1960~1970년대 1세대 이민자들이 이역만리 땅에서 간호사 면허증을 따고 현지에 둥지를 틀었고, 이들이 닦아놓은 터전에 그의 가족들이 하나둘 건너와 간호사를 비롯한 다양한 직종에서 활약하며 한인사회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김 회장도 이민 1세대였던 가족을 따라 1985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 김 회장은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4년간 병원에서 근무하던 어엿한 간호사였다.
하지만 간호사로서 미국 생활은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한국 간호사 면허증으로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할 순 없었다. 미국 간호사가 되려면 RN(Registered nurse)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건너와 간호사 시험을 볼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게 영어"이라며 "어떻게 통과를 하더라도 처음 간호사 생활을 할 때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말을 천천히 하는 노인이 많은 요양병원에 보통 들어가 일하곤 한다"고 말했다.
재외한인간호사회는 이미 원로가 된 1세대 이민 간호사들부터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간호사가 된 자녀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
어린 한인 간호사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도움을 주기도 하고, 1년에 한 번씩 학술대회를 열어 지식도 공유한다. 이미 은퇴한 원로 간호사들을 위한 단체 여행을 기획하기도 하고, 협회가 없는 지역에는 협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김 회장은 "한인회에서 행사를 열면 간호협회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며 "미국에서 간호사는 전문직으로서 굉장히 선망받는 직업이고, 간호협회도 모범단체로 존경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한국 간호사들의 상황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간호법이 없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의사에게 동료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 후배 간호사들에게 "꿈을 크게 갖고 외국에서 간호사를 해보라"고 적극 권장하고 싶다고 했다.
김 회장은 "한국은 의사와 간호사가 상하관계지만 미국은 의사가 간호사를 동료로 존중해준다"며 "의사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환자를 최선으로 돌볼 수 있게 의사와 끊임없이 토론하고 소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조목조목 따져 리포트할 수 있고, 또 그 피해자를 보호해주는 간호법이 존재하지만 한국은 법이 존재하지 않아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일도 엄격하게 나누고 있는데, 한국처럼 간호조무사가 주사 놔주고 약을 주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말처럼 지금 한국에는 간호법이 없다. 하지만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간호법 제정을 위한 노력은 있어 왔다. 실제로 지난 4월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정의와 적정 노동시간 확보, 처우 개선을 요구할 간호사의 권리 등의 내용이 담긴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5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 회장은 "우리 재외 한인 간호사도 간호법 지지를 위해 약 3만 명의 서명을 모아 보내기도 했는데, 막상 한국 사람들은 간호법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더라"며 "의사는 잠깐 보지만 아픈 환자를 24시간 돌보면서 변화를 관찰하는 건 간호사"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가 바빠 환자에게 신경을 덜 쓰면 그만큼 간호를 못 받는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간호법은 간호사를 위한 법이 아닌 간호의 대상이 되는 국민을 위한 법이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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