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부랴 '소아당뇨' 지원책 내놓은 정부…환자·의료계 '떨떠름' 왜?

복지장관 "당뇨관리기기 건보지원 대폭 확대하겠다"
"정부 현실 몰라…중증난치질환 인정·수가 현실화해야"

한 아동병원에서 보호자가 아이를 안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소아당뇨'로 불리는 제1형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 일가족을 죽음으로 내몬 비극적 사건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1형당뇨의 미흡한 지원책에 대한 언론의 지적이 계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이례적으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입장문을 내고 "인슐린 펌프(인슐린 자동주입기) 등 당뇨관리기기 구입 비용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환자들과 의료계는 "이미 나온 대책을 되풀이한 것일 뿐 환자들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형당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9일 충남 태안군에서 "딸이 소아당뇨를 앓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가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다.

이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틀 뒤인 11일 SNS를 통해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1형 당뇨환자가 사용하는 정밀 인슐린 자동주입기 등 당뇨관리 기기 구입비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라며 "당초 이번 지원 확대 계획은 3월 말부터 시행 예정이었으나 준비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 2월 말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장관의 이 같은 입장에도 환자들과 의료계는 "복지부가 아직도 논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13일 "조규홍 장관이 뭔가를 서두르는 것처럼 했지만 이미 지난 12월 28일에 결정된 내용이고 한달 빨리 시행한다고 해서 우리 환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장관이 언급한 대책은 지난 12월 28일 제30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1형 당뇨환자의 당뇨관리기기 구입비 본인부담률을 30%에서 10%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약 380만원이었던 본인부담금은 45만원대로 대폭 낮아진다.

하지만 이 대책에 가장 큰 허점은 19세 미만 소아청소년만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1형당뇨는 '소아당뇨'로 알려져 있지만 2020년 건강보험 가입자 기준으로 집계된 환자 수를 보면 19세 이하는 3255명, 20세 이상 성인은 4만2715명으로 성인 환자가 93%에 이른다.

대한당뇨병학회 재무이사를 맡고 있는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1형당뇨는 어느 연령대에도 발병하는 질환이고 60~70대가 1형당뇨 환자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성인 환자는 항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40대 1형당뇨 환자 가족을 두고 있는 A씨는 "소아당뇨라고들 하지만 성인 환자가 93%가 넘는데 복지부는 이런 사실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복지부가 부리나케 입장문을 냈지만 15세부터 30년이 넘게 1형당뇨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동생은 여전히 지원책에서 제외돼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는 "정부가 그나마 소아청소년들에게 지원해주겠다는 의료기기도 정작 1형당뇨 환자들은 금전적 부담이나 교육의 부재 등으로 대부분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2023.12.15/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실제로 국내에 연속혈당측정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환자는 1형 당뇨병 환자의 10.7%에 불과하다. 인슐린 자동주입기 사용 환자는 고작 0.4%다.

김미영 대표는 "금전적인 부담이 돼서 못 쓰는 경우도 있고 구매하고 나서도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못 쓰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 시스템들이 잘 안 돼 있다 보니 의료기기상점이나 인터넷으로 구매하는데 혈당을 보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손을 놓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몸에 부착하면 혈당이 실시간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혈당이 오른다고 해서 곧바로 인슐린을 주사해서는 안 된다. 인슐린의 경우 종류에 따라 지속 시간도 다르고 피크타임도 달라 적절한 시간에 적당한 양을 주입하는 게 관건이다. 만약 혈당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인슐린을 바로 주사하면 급격하게 저혈당에 빠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24시간 혈당을 체크하면서 인슐린을 스스로 주사해 관리해야 하는 1형당뇨 환자로선 의료기기 사용법과 주사법뿐만 아니라 인슐린의 작용 시간, 음식의 영양성분, 인슐린 양 계산법 등 많은 것을 전문 교육팀에게 배워야 한다. 하지만 1형당뇨 환자들은 이 교육을 제대로 배울 곳이 없다.

김 대표는 "영양·주사·심리·운동 등 A부터 Z까지 모든 것에 교육이 필요한데 이런 교육팀을 꾸릴 수 있는 건 상급종합병원밖에 없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위주의 환자만 봐야 하는데 1형당뇨는 아직 중증 난치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결국 갈 데가 없다"며 "지금 정부의 정책은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주고 스스로 자기주도 학습으로 풀어내라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재현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도 "환자가 합병증 없이 혼자 당을 조절하는 건 교육 없이 불가능한데 관련 지원은 아직 전무한 상황"이라며 "인슐린 자동주입기 구입비만 지원하는 건 수술 재료값만 대고 수술 행위에 대한 보상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소아당뇨인협회에 따르면 1형당뇨를 치료하고 교육할 수 있는 병원은 전국에 76곳뿐이다. 이마저도 절반인 38곳은 수도권에 있다.

하지만 이 병원들마저 한국소아당뇨인협회가 소아 내분비 병의원 목록을 정리한 것일 뿐, 실제로는 이 병원들 모두가 1형당뇨를 볼 의사가 없는 등 상황은 여의치 않다.

문준성 교수는 "1형당뇨의 경우 한 번 환자를 보면 20~30분은 기본인데 이런 환자들을 계속 받는 건 병원 경영상 문제가 된다"며 "그나마 열정을 갖고 교육하는 의사들이 있지만 전국에 몇 안 되다 보니 환자들은 이 의사를 찾아 먼 길을 올 수밖에 없고 수가는 전무하다 보니 병원에선 돈도 안 되는 환자들을 왜 자꾸 보냐는 눈초리를 보내고 내분비내과 기능을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래 전부터 1형당뇨병을 중증 난치 질환으로 지정하고 수가 현실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중증 난치 질환으로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김미영 대표도 "현재는 교수님들의 열정페이로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증 난치 질환 인정과 의료비 부담 완화, 적정한 수가 마련까지 포괄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수가는 계속 현실화 하고 있다"며 "1형당뇨가 중증으로 지정이 돼야 상급종합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유리해진다는 말씀도 알고 있지만 우리로선 유불리를 따져서 제도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존 1형 당뇨병 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에서 진행하던 의사 교육을 6회에서 8회로 확대하고, 간호사 환자사용교육도 8회에서 12회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의료비 부담 완화 효과와 치료기간을 특정해 운영하는 산정특례제도 취지를 고려해 지정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