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꾸라꾸에서 새우잠" "숙박 예약마감"…물폭탄에 '귀가 포기' 속출
대치역·서초역엔 침수차 수십대…교통대란 오전까지 이어져
"눈 앞에 냉장고 다가와"…300㎜ 비 소식에 '귀가포기'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9일 중부지방에 시간당 30~5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출퇴근길 교통대란이 이틀째 이어질 전망이다. 전날(8일) 폭우로 인해 도로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승용차를 두고 대피하거나 평소보다 퇴근시간이 3~4배 더 걸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시민들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부터 강남구 일대,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영등포구 소재 쇼핑몰이 물에 잠기고, 도로가 침수됐다. 1호선 영등포역을 비롯해 지하철역이 물에 잠기면서 대중교통 운행이 일부 중단되고, 동부간선도로 등 도로가 통제돼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인천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김모씨(37)는 전날 집이 침수됐다는 연락을 받고 영업장 주변의 숙박업소를 예약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씨의 업소가 있는 강남역 일대의 호텔, 모텔은 모두 예약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호프집 사장의 가게에서 2시간 눈을 붙이고, 9일 아침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서초구에서 근무하는 법조인 김모씨(49)는 사무실에서 새벽 2시까지 창문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라꾸라꾸 침대를 펴고 잠에 들었다. 김씨는 "집에 가고 싶어도 사방이 물난리라 갈 수가 없었다"며 "오늘도 일찍 퇴근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사무실에서 자야 할 것 같다. 낮 시간대에 옷이라도 가지러 집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삼성동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하모씨(33)는 동틀 무렵 집에 돌아왔다고 하소연했다. 하씨는 "몸이 반쯤 물에 잠긴 채로 도로를 걸어다니는데 눈 앞에 갑자기 냉장고가 다가와 부딪힐 뻔했다. 집 가는 길에 이런 일이 10차례 있었다"며 "비에 젖은 간판이 번쩍번쩍 거려서 감전이 될까 봐 한참을 돌아갔다"고 털어놓았다.
강남구 대치동 소재의 입시학원에 근무하는 임모씨(37)는 전날에 이어 이틀째 숙박업소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임씨는 "집이 경기도 분당인데 폭우로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급하게 애플리케이션으로 인근 호텔을 잡았다"며 "수능 100일 전에 맞춰 출시해야 하는 교재가 있어, 몇시간 걸려 출퇴근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귀가를 한 시민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하던 시민들 중 일부는 귀가하던 중 차에 물이 차 올라 차에서 그대로 탈출해야 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 서초구 서초역 인근에는 차량 수십대가 방치되어 있었다.
강남구 도곡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28·여)는 전날 밤 자가용을 타고 퇴근을 하던 중 차가 갑자기 멈춰 서 차를 길거리에 두고 귀가했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업체를 불러 차를 수리센터에 맡겼다"며 "비는 계속 오고 운전자석이 무릎까지 물이 차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영등포구 소재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정모씨(31·여)는 "전날에는 나이트 근무여서 이른 오전에 퇴근을 해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지 몰랐다"며 "아침에 일어나서 지하주차장으로 갔는데 차가 물에 잠겨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저녁에는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신세를 져야 할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상에는 '침수피해'라는 글과 함께 밤새 상황을 공유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뱅뱅사거리에 고립돼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했는데 부인이 믿어주지 않아 부부싸움을 했다"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는데 어제 밤부터 아파트가 정전돼 일을 할 수가 없다" "밤새 집 안에 들어온 물을 퍼 내느라 한숨도 못 잤다" 는 글이 게시됐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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