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초여름에 이미 계엄 얘기"…조지호·김봉식의 '그날'[이승환의 노캡]
'계엄의 밤' 국회 경찰력 지휘 라인 정점에 있던 두 사람
조지호 경찰청장·김봉식 서울청장…'이례적 인사'의 결말
- 이승환 기자
"(올해) 초여름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국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계엄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여인형 전 방첩사령관·현재 구속)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여 전 사령관이 윤 대통령의 내란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 진술한 말이다. 여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충암파'로 불린다. 윤 대통령·김 전 장관·여 전 사령관 모두 '충암고' 출신으로 12·3 비상계엄을 설계하고 실행한 '몸통'으로 꼽힌다.
여 전 사령관의 말이 맞는다면 윤 대통령은 초여름(5~6월) 계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군사 전문가들도 "윤 대통령이 최소 수 개월 계엄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윤 대통령은 어떤 준비를 했을까.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막기 위해 국회를 통제하고 정적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을 체포하려는 작전에 군인만 동원됐던 게 아니다. 경찰력도 동원했거나 동원하려는 정황이 속속 확인된다. '계엄의 밤' 당시 총 26개의 경찰 기동대(총 1500여 명 추정)가 투입돼 국회를 통제했다.
당시 경찰 지휘 라인 꼭대기에는 '경찰 서열 1위' 조지호 경찰청장(구속)과 '경찰 서열 2위' 김봉식 서울경찰청장(구속)이 있었다. 조 청장이 지시하면 김 서울청장이 그것을 검토한 후 현장에 하달하는 식이었다.
두 사람은 3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윤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1시간 25분 전쯤이었다. 윤 대통령은 안가에서 '장악 대상 기관'(국회·MBC·여론조사 꽃 등 10여 곳)을 적시한 A4 한 장 분량의 문서를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에게 전달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부터 주목해야 할 것은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의 '취임 시기와 배경'이다. 조 청장은 지난 8월 12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전국 13만 경찰관을 총괄하는 경찰청장으로 취임했다. 김 서울청장은 지난 9월 12일 윤 대통령의 임명으로 서울 치안을 책임지는 서울청장이 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 초여름 머릿속에 계엄을 떠올렸다고 가정해 보자. 한여름(8~9월) 두 사람을 잇달아 임명한 것은 계엄을 염두에 둔 인사가 아니었느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은 어떻게 하여 경찰 조직 '정점'에 올랐을까
조 청장은 청장이 되기 전부터 이미 실세로 불렸다. 지난 2022년 12월 28일 경찰청 차장으로 취임한 후 '청장보다 무서운 차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찰청 차장은 경찰청장에 이은 경찰청 서열 2위로, 경찰법 제15조에 따라 경찰청장을 보좌하고 청장 부재 시 업무를 대행한다. 업무에서 나타나듯, 경찰청 차장은 존재감이 큰 자리는 아니다.
차장 시절 조 청장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보좌해야' 하는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곧잘 들이받았다고 한다. 조직개편과 마약 범죄 대책 등 주요 현안 간부회의 때 윤 청장에게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해 분위기가 싸해지곤 했다. 윤 청장이 휴가가 간 사이, 조 차장이 윤 청장의 승인을 받은 사안을 간부들에게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전언도 있다.
이때만 해도 기획통 조 청장이 원칙적이고 워낙 일을 잘해 그런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일각에선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왔다. "조 차장이 대통령실에 댄 줄이 윤 청장의 줄보다 튼튼하다." 지방의 사업가가 대통령실 실세와 조 청장 사이에 다리를 놓아줬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경찰청 서열 2위 때부터 조 청장의 위세가 대단했던 것은 분명하다.
조 청장의 최대 장점은 조직 장악력이다. 대가 세기로 유명한 경찰 간부조차도 조 청장에게 보고할 때면 벌벌 떨었다고 한다. 그가 지시하면 간부들은 군말 없이 수용했다. 그런 조 청장이 계엄 선포 약 1시간 뒤 '국회 전면 봉쇄'를 지시했다. 경찰관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조 청장과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중간 관리자급 경찰관은 말했다.
"천하의 조지호가 국회 봉쇄를 시켰던 것이니 일선에선 따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련히 잘 검토한 후 지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러나 고작 '10여 분'에 불과했다. 조 청장이 '(국회 정치 활동을 금하는) 포고령을 확인하라'는 박안수 당시 계엄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국회 전면 봉쇄를 지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10여 분 동안 검토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 비상계엄 선포 후 약 1시간 30분 뒤 조 청장은 경찰 간부회의를 진행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시도경찰청의 한 경찰 간부(총경급)는 말했다.
"조 청장 얼굴이 상기돼 있고, 손도 조금 떠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당황하는 것은 처음 봤어요. 이 사안(비상계엄)은 (국회 통제 업무를 맡는) 경비국이 주도하지만 (법률 검토를 하는) 기획조정국에서도 함께 살펴봐 달라고 지시하더군요."
조 청장은 포고령이 발동된 3일 밤 11시부터 계엄이 해제된 이튿날(4일) 새벽 1시 사이에 윤 대통령으로부터 총 여섯 차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6번의 전화에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 체포하라'는 명령했다는 게 조 청장 측 주장이다. 조 청장은 해당 지시를 모두 묵살했다고 한다.
조 청장을 아는 경찰관 중 일부는 "체포 명령을 거부한 것이 조지호스럽긴 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찰 내 냉소적인 반응이 두드러진다. 조 청장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언론 보도를 알고 계엄을 알았다"고 위증했기 때문이다.
조 청장은 언론 보도가 나오기 최소 2시간 전 윤 대통령과 대면했다. 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준비 지시'를 받고 비상계엄을 명확하게 인지했다. 조 청장은 국회 위증과 관련해 "(체포) 명령 불이행으로 계엄이 실패한 것에 대통령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평소 입버릇처럼 '국민을 위한 경찰'을 강조하던 조 청장이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생중계 화면을 통해 보는 국회 현안 질의에서 '대통령과의 인연'을 우선 고려한 것이다.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간부급 경찰관은 말했다.
"조 청장이 대통령실과 대립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요. 늘 원칙을 강조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지만 윗선(대통령실)을 대할 때는 달랐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오히려 대통령실의 의중을 간파해 알아서 선제적으로 총대를 메고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지요."
경북 청송군 출신인 조 청장은 경찰대 6기 졸업생으로 전임 윤희근 청장(7기)보다 기수가 높다. 조 청장처럼 기수가 역전돼 청장이 된 것은 경찰 역사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올해 1월 혈액암 진단을 받았는데 그것을 숨기면서까지 청장이 됐다. 경찰 총수로서 추진하고 싶었던 개혁이 있었던 걸까. "정 아니다 싶으면 내 발로 청장직에서 내려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조 청장이었다. 국회 전면 통제 지시는 그런 그에게 '원칙'이었을까, 아니면 '역사적 오판'이었을까. 지난 1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자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던 조 청장은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봉식 서울청장도 이날 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조 청장과 함께 구속됐다. 김 서울청장은 실세 조 청장 못지않게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차기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물망에 올랐을 정도였다.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 바로 계급인 치안정감이지만 경찰 수사를 총괄해 존재감과 영향력이 청장에 버금간다. 윤 대통령의 내란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경찰관도 국수본부장(우종수)이다.
김 서울청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지검·대구 고검에서 일할 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출신인 김 서울청장은 대구 달서서장과 경북경찰청 형사과장, 대구경찰청 수사과장·형사과장·광역수사대장 등을 역임했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우리 봉식이"라고 표현하며 각별히 아낀다는 얘기가 많았다. 김 서울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 언급을 꺼렸지만 대통령과의 인연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는 현 정부 출범 전에 눈에 띄지 않았다. 수사 업무에서 역량을 발했으나 주로 TK(대구·경북)에서 근무해 '기수 내 선두주자급'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성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내거나 높은 자리를 꿰차려고 안간힘을 쓰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러던 김 서울청장은 지난해 1월 서울청 수사부장으로 임명됐다. 그가 급부상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8개월 만인 지난해 9월엔 치안감(경찰 서열 세 번째 계급)으로 영전해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이동했다. 경찰청 수사국장도 수사 라인 핵심 보직이다. 이후 10개월 만인 지난 6월, 경찰 서열 두 번째 계급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기남부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3개월도 안 돼 서울청장으로 옮겼다.
서울청장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경기남부경찰청도 국내에서 치안 수요가 가장 많은 시도경찰청이다. 그런 만큼 '3개월 만에' 경기남부청장에서 서울청장으로 이동한 김 청장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경찰관이 많았다.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장이 너무 빨리 바뀌면 그 지역의 치안 공백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경찰청의 간부급 경찰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주로 TK에서 근무한 사람이 서울 물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서울은 수사 형사 교통 경비 등 경찰 치안을 총망라해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예요. 김 서울청장이 대통령실 낙하산 타고 들어왔다는 것은 서울청 직원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에요. 놀라지도 않을 겁니다."
다만 김 서울청장과 함께 일한 직원들의 평가는 대제로 긍정적이다. 조직원들을 가혹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조 청장과 달리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리더라는 평이 다수였다. 김 서울청장은 기자들과 만나면 '저는 부족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낮추곤 했다. 한두 달 전쯤, 서울청장 집무실에서 대면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서울청장은 저에게 과분한 자리"라고까지 했다.
김 서울청장은 원래 긴급 체포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약 45분 뒤인 3일 밤 11시쯤 "국회의원과 보좌관, 기자들은 국회에 출입시켜라"고 국회 경비대에게 지시한 인물이다. 당시 다수의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할 수 있었다. 표결에는 의원 300명 중 190명이 참석했으며 '190명 전원 찬성'으로 결의안이 가결됐다.
그는 "시민들이나 국회의원들과 물리적 마찰 및 폭력 사태를 절대 일으키지 말라"고도 지시했다. 어찌 됐든 김 서울청장의 지시가 비상계엄 해제에 기여했고 그 역시 체포되기 전까지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후 조 청장의 지시를 수용해 3일 밤 11시 37분 국회를 봉쇄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조 청장은 위헌적이라는 포고령에 근거해 그런 지시를 내렸고 김 서울청장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3일 밤 11시 37분 이후 김 서울청장이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확인됐다. 그 역시 사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김 서울청장이 긴급 체포되기 전날(11일) 오후, 기자는 가까스로 그와 통화했다. "저는 (수사와 관련해) 할 말이 없습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무언가 체념한 듯한 느낌이었다. 김 서울청장은 "그래도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나지막하게 답했다.
"군인들 (국회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막 (양심고백 같은 것) 하고 그러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더군요. 당당하게 조사받고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을 져야죠."
김 서울청장은 원래 서울청장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경찰청장직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젠가 그를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서울청장직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통령의 의지가 완강했었나요? 아니면 마음속 한편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요?"
그에게 정직한 대답을 들을 날이 올까. 그럴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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