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좀 보낸 건데"…보이스피싱 미끼문자 발송업자 '죄의식 0'

고급 아파트서 페라리 몰며 초호화 생활, 국내서 버젓이 활동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 범죄, '이 용어' 조심해야

보이스피싱 미끼문자를 불법으로 대량 발송한 혐의를 받는 김 모 씨(39)가 경찰에 붙잡혔다. /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제공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날 왜 잡아가죠?"

경찰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김 모 씨(39)의 아파트에 진입했을 때 김 씨가 보인 첫 반응이었다. 김 씨는 2015년부터 해외에 서버를 둔 문자 발송 사이트를 운영하며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등으로부터 의뢰받은 '미끼 문자'를 불법 전송한 혐의로 지난달 말 구속됐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7일 서울 마포구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문자전송 업체 6곳을 단속한 결과 김 씨를 포함한 20명을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자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해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가 운영한 문자 발송 사이트를 통해 발송된 미끼 문자는 총 21억 건에 달했다. 미끼 문자는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카드 발급이나 세금 징수 등의 내용으로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스스로 연락하게끔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김 씨는 경찰에 체포될 당시 "날 어떻게 알았느냐", "문자 좀 보냈다고 이러느냐"는 등 죄의식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씨는 버젓이 한국에서 활동하며 범죄수익으로 초호화 아파트와 페라리 등 고가 스포츠카를 타는 등 호화 생활을 누렸는데 수사기관에 단속될 리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여전히 기승…피해자 어떻게 속이나

ⓒ News1 DB

경찰 수사로 불법 문자 전송업자들이 검거되면서 기관을 사칭하는 미끼 문자는 자취를 감췄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문자 대신 직접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 배송 기사로 속이는 방식으로 수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범죄조직은 미리 확보한 피해자의 인적 사항 정보를 토대로 전화를 걸어 "카드 배송을 위해 전화했다"고 한 뒤 피해자가 카드를 발급한 적이 없다고 답하면 "개인정보가 도용된 것 같으니 카드사 신고센터로 전화하라"면서 지역번호나 1688 등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하지만 문제의 전화번호는 중국 콜센터로 연결돼 피해자는 신고센터 직원을 사칭하는 조직원과 상담하게 된다. 콜센터 조직원은 상담하는 척 "금융감독원 앱(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피해자가 설치하는 앱은 휴대전화 정보를 빼돌려 전화번호를 조작하는 '악성 앱'과 '원격제어 앱'이었다.

악성 앱의 주요 기능은 피해자가 실제로 어디로 전화하든 모두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연결되게끔 번호를 조작한다. 피해자는 금융감독원 신고를 거쳐 개인정보 도용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과 통화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조직원이 검사를 사칭하며 "너도 공범 아니냐", "범인이 아니라면 입증하라", "구속되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압박한다.

자주 쓰이는 '이 용어' 조심해야…수표 인출·상품권 구매 요구도 의심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피해자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국가안전계좌(국가보안계좌) △공탁금 △깡통 계좌 △상품권 결제 △현금 일련번호 등을 소개하며 만약 비슷한 전화를 받는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피해자는 '무죄를 입증하려면 공탁금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출받아서라도 범인들이 제시하는 '국가에서 운용하는 안전 계좌'에 돈을 넣게 되지만 실제로는 모두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인들은 '행정자산으로 전환돼 국고에 귀속된다', '나중에 무죄로 밝혀지면 다 돌려받는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설득하지만 모두 거짓말이다. 그 말에 속은 피해자는 안내받은 계좌로 거액의 돈을 이체한 뒤 기다린다. 그 사이 범인들이 해당 계좌에서 돈을 모두 빼돌리고 한참 지난 후에야 돈이 없어진 것을 안 피해자가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경각심으로 인해 각 은행 지점에서 거액의 현금 인출이 제한되자 수표로 인출을 요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품권을 구매하고 핀 번호를 알려달라는 유형도 여전히 자주 쓰이는 수법이다.

경찰은 "지난 1월 미끼 문자로 연결된 보이스피싱 범죄 1건당 피해 금액이 2000만~4000만 원 수준이었는데 8월에는 1건당 피해 금액 중간값이 1억 7000만~2억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며 "사전에 범죄조직이 자주 쓰는 용어를 알아두고 수사기관이라면서 돈을 요구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