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틀거리면 시민 신고 많아'…음주운전 특별단속 실적은 '0건'
대리운전 일상화·집중단속 예고 효과…이태원 참사 여파도
내년 1월까지 집중단속…매주 금요일 야간은 전국 일제단속
- 유민주 기자
'실적이 없지만 즐겁다. 기분 좋은 허탕이다'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18일 밤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서울시 동대문구 난계로 BYC 건물 앞, 장한평역 사거리 등에서 음주운전 단속에 나섰던 동대문경찰서 소속 교통경찰들은 단 한 건의 적발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같은 시각 서울시 성동구 뚝섬로 인근에서 단속에 나선 성동경찰서 교통경찰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첫 연말을 맞아 음주운전 집중단속이 시작됐다. 이날 서울 내에서 이뤄진 일부 음주운전 단속 현장을 동행 취재하니 한 명의 음주운전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관호 동대문경찰서 교통3팀장은 "대리운전이 일상화됐고 집중단속 예고 효과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최근 (이태원) 참사 여파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근래 들어서는 음주운전 적발 사례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장에 있던 다른 경찰은 "요즘에는 시민의 신고로 음주운전이 적발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앞차가 비틀거리는 것을 목격하면 차량 번호를 신고해주셔서 해당 주소지로 출동해 조사하는 사례가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단속 실적은 한 건도 없었지만 교통경찰들은 운전자들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운전자들이 음주측정기에 '후'하고 입김을 불려고 할 때마다 "불지 말고 얼굴만 가까이하세요"라고 안내했다. 경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숨을 불어넣는 음주측정기가 아닌 비접촉 감지기를 사용하는데 대부분의 운전자는 기존 방식이 익숙한 까닭이다
음주측정기가 잘못 반응하면서 일부 운전자는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검은색 차를 타고 있던 한 여성은 비접촉 감지기에 신호가 잡히자 경찰의 지시를 받아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는 차에서 내려 입가심을 한 뒤 다시 음주 측정을 했으나 알코올 농도가 측정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팀장은 "코로나19 재확산을 고려해 비접촉식 음주 감지기에 먼저 감지가 되면 음주측정기로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고 있다"며 "감지기가 예민해 화장품이나 다른 성분으로 감지기가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후 11시5분쯤 장한평역 사거리에서 검은 승용차를 탄 남성도 차에서 내려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했지만 이 남성 역시 알코올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저 술 안 마셨어요"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치던 이 남성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신분 조회만 받은 후 현장을 떠났다. 단속 경찰관은 "다른 것 때문에 감지기에 잡힌 것 같다"고 안내했다.
큰 도로 옆 좁은 골목 역시 단속 대상이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골목으로 지나가자 경찰은 놓치지 않고 음주단속을 했다.
경찰은 이날부터 내년 1월까지 각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와 손잡고 음주운전을 집중적으로 단속한다.
집중단속 기간에는 음주단속을 매일 실시하되,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집중되는 매주 금요일 야간에 전국적으로 일제히 단속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심야시간대인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음주운전 교통사고 발생 비중(잠정치)은 29.9%를 기록했다. 코로나 시국이었던 지난해(21.0%)보다 9%포인트(p) 가까이 상승했다.
심야시간대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자 비중(잠정치)도 올해 하반기 54.5%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상반기(29.9%)보다 24.5%p, 지난해 전체(35.9%)보다 18.6%p 오른 수치다.
지난해 전체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음주문화 변화 등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28.2% 감소했다. 올해도 10월까지 26.7%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심야시간대 음주운전 사고 비율이 상승한 것은 영업시간 제한 등 거리두기 해제 후 늦은 시간까지 하는 술자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하고 맞이하는 첫 연말인 만큼 자칫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질 수 있는 시기"라며 “음주운전은 개인은 물론, 가정, 나아가 사회까지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잊지 말고, 안전한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도록 음주운전을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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