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보고 안 했어"…회사 대표가 부하 직원 12시간 폭행·치사
사설 구급차 운전자 접촉 사고 내자 '늦은 보고' 트집[사건속 오늘]
차에 시신 놔두고 식당서 여유, CCTV 뜯어 증거인멸…징역 18년+2년
- 신초롱 기자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사설 응급구조센터에서 일하던 A 씨가 몰라볼 정도로 야윈 모습으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한때 몸무게가 100㎏에 가까울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었던 A 씨는 2020년 12월 24일 오후 1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12시간여 동안 사무실에서 폭행당해 사망했다.
연락을 받은 A 씨의 동생은 사설 구급차를 운전하는 형이 사고를 당했나 했지만 시신을 본 뒤 사건임을 직감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및 외인성 쇼크사였다. A 씨의 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피부는 찢겨 있고 온몸이 전부 멍이었다. 마치 고문이라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A 씨의 참혹한 마지막 모습을 본 119 대원도 생생히 기억했다. 온몸에 멍이 든 A 씨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신고자가 사설 구급차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사망한 지 꽤 시간이 흘러 몸이 굳은 A 씨에게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하던 남성은 그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사설 응급구조단 대표 B 씨였다.
B 씨는 오래전부터 A 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에도 폭행이 심해 동료가 몰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 그날의 폭행도 평소처럼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됐다.
A 씨가 전날 병원 주차장에서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낸 뒤 병원 원무과에 알린 것을 뒤늦게 알게 된 B 씨는 자신에게 왜 먼저 보고하지 않았냐며 폭행하기 시작했다.
B 씨는 때리다 멈췄다 때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폭행은 직원들의 퇴근 시간인 6시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4시간 폭행 끝에 A 씨가 의식을 잃자 목격한 직원들을 서둘러 퇴근시켰다.
30분 뒤 B 씨는 직원들에게 동영상 하나를 보냈다. 걱정하는 직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영상을 찍어 "얘 깨어났고 아까 쓰러진 게 다 연기였다"고 이야기했다.
다음 날 B 씨는 아침 출근을 앞둔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A 씨가 밤새도록 사람을 괴롭히고, 쥐어패면 저능아처럼 행동한다면서 직원들을 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B 씨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사무실 입구에 정차된 사설 구급 차량 뒷좌석 문이 열렸다 닫히더니 바로 옆 주유소 주차장에 정차했다.
차 안에는 A 씨가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함께 타고 있던 회사 본부장과 B 씨의 아내는 쓰러진 A 씨를 곁에 두고 운전석에 있는 B 씨와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차를 나눠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30분 뒤 구급 차량이 멈춰선 건 한 식당 앞이었다. B 씨가 지인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세 사람은 A 씨를 차량에 방치한 채 3시간이 넘는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경찰은 B 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그를 돕던 3명의 여성도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입건했다. 공범들은 B 씨의 명령을 따랐을 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날 오후에 시작된 B 씨의 폭행이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보고 있던 여자들은 A 씨를 방치해두고 태연하게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일행은 식당으로 A 씨의 동료 직원을 부르기도 했다.
자신이 감옥살이하게 생겼다며 농담하던 B 씨는 시신을 방치한 채 증거들을 지우고 다녔다. 산 아래 허름한 집 한 채. 마당을 비추던 CCTV는 흔적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A 씨는 2019년 6월 직장 동료 C 씨와 함께 이 집으로 이사했다. B 씨의 명령으로 이사를 왔지만 월세 20만 원은 A 씨가 냈다.
룸메이트였던 C 씨는 이곳에 함께 살게 된 이유가 B 씨가 키우던 '개' 때문이라고 했다. 허름한 집은 몸집이 커진 B 씨의 개 도베르만을 키우기 위한 개집이었던 것.
개를 키우던 방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다. B 씨는 개를 보겠다고 설치한 CCTV로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A 씨는 출퇴근부터 개의 밥, 목욕을 챙기는 일까지 모든 것을 B 씨에게 보고해야 했다.
C 씨는 본격적으로 폭행이 시작된 건 2019년도 초부터였고, 2020년 7월 말까지 거의 주 2~3회씩 폭행당했다고 밝혔다.
전부터 종종 폭행이 있었지만 두 사람이 개 집으로 이사 온 뒤부터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자기를 속이려고 했다, 거짓말을 한다, 차량에 손괴를 했다는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C 씨는 도망치다 퇴사했지만, A 씨는 이곳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계속 당했다. C 씨는 "같이 도망쳤으면 최소한 이렇게는 안 됐을 거니까. 저 살겠다고 도망친 게 너무 미안하더라"며 죄책감을 토로했다.
B 씨는 업무상 생긴 차량 결함을 이유로 차용증을 강요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에게 쌓인 빚은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갔지만 갚아도 제자리였다. 한 달에 150만 원이 빠져나간 적도 있었다. 5월에 지급된 돈은 44만 원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A 씨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사망한 A 씨의 외투 주머니에서는 마지막 식사가 됐을지 모를 주먹밥 한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B 씨는 차용증을 가지고 부모님 찾아가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녹음 파일에서 B 씨는 "호래자식아. 네 아비, 어미가 불쌍하지 않나. XXX야"라며 소리쳤다.
가족들한테 피해가 갈까 두려워했던 A 씨는 폭행을 당하는 것보다 가족의 안위를 더욱 걱정했다.
A 씨는 10분간 이어진 대화에서 무기력해진 상태로 '죄송하다'는 말만 50번 가까이 반복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경찰이 B 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살인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A 씨를 즉각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고 7시간 가까이 방치한 점이 살인의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2022년 3월 대법원은 부하 직원인 A 씨를 12시간에 걸쳐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에 대해 징역 18년, 10년 동안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B 씨는 징역 2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B 씨의 배우자와 간부 직원에게도 각각 징역 2년을 선고했다.
B 씨는 A 씨를 숨지게 하기에 앞서 1년간 A 씨를 폭행한 혐의와 함께 또 다른 직원도 9차례에 걸쳐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또 업무상 보고 누락이나 거짓말, 응급차 관리 부실 등 명목으로 벌금을 내라며 돈을 빼앗았다. 이렇게 뜯어낸 돈은 총 9863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B 씨의 범행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아내와 업체 간부도 A 씨를 직접 폭행한 적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다.
rong@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