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낑낑' 끌고 나온 빨간 고무통…그 속에 의붓엄마 시신

복지 직원 "일주일째 연락 두절" 신고…지방에 유기[사건속 오늘]
살해후 통장서 165만원 인출…"뺨 맞고 우발 범행" 주장에도 중형

(서울경찰 유튜브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지난해 오늘,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는 의붓어머니 재산을 노리고 살해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48세 남성 A 씨를 강도살인과 시체 은닉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같은 해 10월 19일 혼자 사는 의붓어머니 집에서 누나의 장애인 연금 통장 등을 가져가려다 제지하는 의붓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경북 예천에 암매장한 후 연금 165만 원을 인출해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경찰은 A 씨를 우발적 살인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의붓어머니가 누나의 정신병원 치료비를 연체해 통장을 확인하려다 뺨을 맞아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완 수사를 통해 A 씨가 지속적으로 의붓어머니 재산을 노린 사실을 확인하고 '강도살인죄'로 혐의를 변경, 재판부에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동사무소 "독거노인이 일주일째 연락 안 된다"…경찰에 실종 신고 접수

사건은 2023년 10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75세 의붓어머니 B 씨의 집에 찾아가 말다툼 끝에 살해했다. 살해 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고무통에 시신을 담아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예천에 암매장했다.

완전 범죄를 꿈꾸던 A 씨의 계획이 무산된 건 주민센터의 신고 덕분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인 11월, 동사무소 복지 담당 공무원은 B 씨와 일주일째 연락이 안 되는 걸 이상히 여기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서울경찰 유튜브 갈무리)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 B 씨의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은 경북 예천으로 확인됐다. 예천은 1년 전 사별한 B 씨 남편의 고향이었다. 경찰은 B 씨가 단순히 남편을 그리워해 혼자 내려갔다고 보고 단순 실종으로 봤다.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B 씨를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의붓아들 A 씨의 진술이 엇갈리는 등 수상한 점이 포착됐다. 급기야 진술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나자는 경찰과의 통화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계모 집 부근 CCTV서 의문의 고무통 낑낑 끌고 사라진 의붓아들 포착

고시원 CCTV에는 A 씨가 다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실종수사팀은 이때부터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전환해 수사를 시작했다.

B 씨 주거지 부근에 있는 CCTV에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됐다. 사건 당일 저녁 A 씨는 B 씨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B 씨가 나온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다음 날 저녁 B 씨 집을 또다시 찾은 A 씨는 빨간 고무통을 힘겹게 굴리며 나왔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검은색 렌터카 트렁크에 고무통을 실은 뒤 현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은 A 씨가 몰고 간 차를 수소문했다. 트렁크 안에서는 혈흔 반응이 나왔다. A 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수원에 있는 숙박업소에서 검거됐고, 다음 날 B 씨는 예천에 있는 한 갈대밭에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울경찰 유튜브 갈무리)

A 씨는 의붓어머니를 살해하고 다음 날 시신을 버릴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경북 예천으로 향한 뒤 휴대전화를 버리고 왔다. 셋째 날에는 렌터카를 빌려 예천까지 시신을 싣고 가 암매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진술에서 A 씨는 의붓어머니가 돈도 없으면서 있는 돈을 어떤 남성에게 줬다고 이야기했다. 또 누나의 치료비 연체 문제 등으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A 씨는 의붓어머니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려 홧김에 목을 졸라 죽였다고 말을 바꿨다.

계모 살해 후 통장서 총 165만 원 인출…"재산 상속" 허위 유언장 작성

A 씨가 숨기려 한 진실은 금세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B 씨가 교제하던 남성 사이에는 금전 거래가 전혀 없었다. 누나의 치료비 연체 또한 A 씨 때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A 씨는 의붓어머니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당일날 바로 그의 기초연금 통장에서 현금 133만 원을 인출했고 닷새 뒤 또다시 32만 원을 더 출금했다.

A 씨가 의붓어머니의 통장을 노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22년 6월에도 통장에서 115만 원을 인출했다. 의붓어머니의 임대보증금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추가로 더 받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의붓어머니의 허위 유언장까지 작성했다. 사망할 경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경찰 유튜브 갈무리)

A 씨는 같은 해 4월 실직한 상태였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경륜·경정에 매달 300만 원을 넘게 썼다. 인터넷방송 BJ에게도 100만 원을 넘게 쓰며 재산을 탕진했다.

휴대전화 요금조차 못 내는 상황에 채무는 2000만 원에 달했다. 교제하던 여자친구에게는 실직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돈을 빌려 쓰며 곧 갚겠다고 약속했다.

"우발 범행" 선처 호소에도 1심, 징역 35년·위치추적장치 20년 부착 명령

지난 4월 23일 서울남부지법 제15형사부(부장판사 양환승)는 강도살인, 시체유기 혐의를 받는 A 씨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장치 20년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강도살인은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범죄여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를 볼 때 죄책이 더욱 무겁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금전 문제로 의붓어머니를 살해한 뒤 친아버지 고향에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 A 씨가 19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9/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또 "피고인이 종전에도 강도살인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한 적이 있다"면서 "계획 살인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데다 범행 수법이 다른 사건에 비해 매우 잔혹하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했다.

A 씨 측 변호인은 앞서 열린 재판에서 "의붓어머니가 갑자기 A 씨의 뺨을 때려 실랑이하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며 "수사에 협조했고 A 씨가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한 바 있다.

검찰은 1심에서 A 씨가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데 대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상태다. 서울남부지검 공판부(부장검사 이재연)는 "돈을 노리고 의붓어머니의 생명을 빼앗은 후 사체를 은닉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고 유족의 용서도 받지 못했다"며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r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