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학생"…65년 돌아 고사장 앞에 선 최고령 수험생[2025수능]
83세 임태수 할머니 "공부 그만둘까 고민한 적 없어"
'평생학교' 일성여고 만학도 수험생 107명 후배 응원 속 입실
- 남해인 기자
"나도 학생이다. 그런 마음이 들어요."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인 14일 오전 7시 30분쯤 서울 마포구 홍익대사범대학부속여고에 올해 수능 최고령 응시생인 83세 임태수 할머니(일성여고 3학년)가 보통의 수험생들처럼 백팩(배낭)을 매고 얇은 패딩 재킷 차림으로 고사장 정문 앞에 도착했다.
임 씨는 정문 앞에 서서 이곳을 지나는 다른 10대 수험생들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는 수능을 보는 소감으로 "기쁘다"고 말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 듯 울컥하며 "공부를 그만둘까 고민한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65년 만에 고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고 받아 든 수능 수험표를 자랑스럽게 꺼내 보였다. 그는 "영어 과목이 제일 어렵다"며 "듣기평가 소리가 작다 보니까 잘 안 들려 걱정"이라고 했다.
아들 김진국 씨(54)도 함께 고사장을 찾아 정문 앞까지 임 씨를 배웅했다. 김 씨는 "어릴 적 사정이 있으셔서 중학교를 중퇴하셨는데 그동안 공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짠했다. 연세가 있으신데 공부를 오래 하시니 무릎, 허리가 안 좋아져 병원에 많이 모시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워낙 열정이 많으셔서 오늘 잘하실 거라고 생각한다"며 "끝나고 가족들과 기념하며 저녁 한 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 씨는 "잘하고 오라"며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 형형색색의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선배를 응원하러 온 일성여고 후배 할머니들은 "엄마도 대학 간다. 일성여고 파이팅!"을 외치며 임 씨를 향해 환호했다.
임 씨는 후배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며 정문을 통과했다. 학교 입구까지 이어진 가파른 경사로를 성큼성큼 올라가는 다른 수험생들과 달리, 임 씨는 한쪽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오르다 한 차례 멈추며 숨을 골랐다.
이날 일성여고 만학도 수험생들이 정문을 통과하자 교문을 지키던 고사장 관계자들이 일반적인 수험생과 다른 모습에 따로 수험표를 확인하기도 했다.
일성여고 만학도 수험생 107명은 이곳 홍대부고와 서울여고, 중앙여고에서 수능을 치른다. 서울 마포구 소재 일성여중·고는 어린 시절 다양한 이유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40~80대 여성 만학도들이 중·고교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직접 가르쳐온 만학도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은경 일성여고 교사는 "매년 보지만 짠한 마음이 든다. 시험 보고 몸살 앓는 분들도 계셔서 오늘 하루 이 과정을 잘 거쳐서 나오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라며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김 교사는 "정문을 지나가면 학부모인 줄 알고 수험표를 따로 확인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나. 그럼, 새삼 '나는 다르구나', '나도 저 학생들처럼 어릴 때 왔으면 달랐을 텐데' 하며 기쁜 마음과 함께 회한도 느끼시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성여고 학생 유 모 씨(70)는 응원을 마친 뒤 "이보다 더 큰 감동이 어디 있겠느냐"고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유 씨는 "내년에 체력이 된다면 수능을 보고 싶다. 떨어질망정, 공부를 하고 도전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라며 활짝 웃었다.
수능은 이날 전국 85개 시험지구 1282개 시험장에서 치러진다. 전국 응시 지원자는 총 52만 2670명이다.
hi_na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