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유 없는 판결문으로 진실규명 취소? 국가폭력 정당화" 우려

진실화해위 야당 추천위원 백남식 사건 재조사 결정 불합리
"국방경비법 남용 사례 많아…진실규명 취소 10건 이상 될수도"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제71차 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2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야당 추천위원들은 최근 재조사 결정이 나온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과 관련, 진실규명이 취소될 경우 국가 폭력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 추천위원인 이상훈 상임위원 및 오동석·허상수·이상희 위원은 27일 오후 서울 중구 뉴스타파 센터에서 간담회를 열고 입장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해당 사건 판결문은 사실관계도 불분명하고 외견상 하자도 많아 보인다는 점에서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며 "단지 국방경비법 판결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해당 판결문의 신뢰성을 따지지 않은 채 기존 진실규명 결정마저 취소하고 난데 없이 유족들을 사형수 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작년 11월28일 충남 남부지역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 가운데 희생자 조카인 백남식 씨가 신청했던 고 백락정 씨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돌연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7일 충남 서천에서 백남식 씨의 아버지인 백락용 씨가 경찰에 갑자기 끌려간 후 동생인 백락정 씨가 사흘 후인 6월30일 지서에 형의 면회를 갔다가 행방불명됐다.

진실화해위는 백락정 씨가 군경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다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백락정 씨가 1951년 1월6일 '이적행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의 판결문을 확인했다.

다만 이 판결문에는 2장에 걸쳐 군법회의가 이적행위를 이유로 사형을 언도했다는 말만 나올 뿐 구체적인 판결 이유나 사실 관계는 언급돼 있지 않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전쟁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당시 군인에게 적용되는 국방경비법을 민간인에게 무리하게 적용해 사형되거나 처벌된 사례가 많았다"며 "이와 유사한 사건이 10건이 있어 졸지에 진실 규명이 취소되는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백남식 씨는 "충남 서천에 인민군이 진입한 것은 1950년 7월 17일인데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언제 이적행위를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체포 기록도, 교도소 수감 기록도, 사형 집행 기록도 없고 가족에게 통보해준 적도 없어서 행방불명으로 신청했는데 일률적으로 (판결문만 보고) 이렇게 평가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국방경비법으로 재판 받은 민간인은 약 2만 명으로 그 가운데 단심제로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7300명 정도다. 진실화해위 1기가 조사했던 전재흥 사건도 당시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으로 단심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사실 관계 오류와 절차적 하자로 인해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이상희 위원은 "180여명이 학살된 마산형무소 사건도 국방경비법이 동원됐다"며 "국방경비법 사건 판결문을 모두 적법하게 본다면 집단 희생의 본질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