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보러 가야 하는데"…100% 비대면 예매 '소외된' 노인들
매년 반복되는 '디지털 소외'…코로나19 이후 '효율화' 가속화
18대 키오스크 '텅텅'…사람 있는 매표소에 길게 늘어선 노인들
- 이기범 기자, 김지호 기자,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김지호 김종훈 기자 = "자녀들이 표 예매를 다 해주는데 이번에는 얘기를 안 했다. (노인들에게) 너무 어려운 시대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역. 경주로 향하는 A 씨(77·남)는 종이 티켓을 손에 쥔 채 온라인 예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A 씨처럼 노인들은 18대의 키오스크를 뒤로 한 채 직원이 있는 매표소 창구에 길게 줄을 섰다.
영동행 KTX에 몸을 싣는 조용진 씨(64·남)는 스마트폰으로 예매한 표를 자랑스레 들어 보였다. 하지만 조 씨는 비교적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편임에도 "추석 한 달 전에 매표소 창구에서 자유롭게 표를 끊을 수 있게 해주면 노인들도 쉽게 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설이나 추석 명절 기차표 예매를 100% 비대면 예매로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20% 현장 예매를 진행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추석 때부터 이 같은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추석 명절 열차 승차권 예매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경우 지난달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전화접수나 온라인으로만 진행됐다. 올해 설부터 교통약자 예매 편의를 위해 할당 좌석 비율을 10%에서 20%로 늘렸지만 오프라인 창구 예매는 받지 않고, 비대면으로만 진행되는 탓에 노인들은 여전히 불편함을 토로했다.
고속버스도 상황도 비슷했다. 노인들은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8개의 키오스크 대신 사람이 배치된 매표소로 몰렸다.
여주에 내려간다는 B 씨(75·여)도 매표소 창구에서 표를 끊고 나오며 "보통은 아들이 예매를 해준다"며 "70대이다 보니 매표소가 아닌 키오스크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천행 버스에 몸을 실은 60대 여성 C 씨는 "예매가 어려워서 보통 주변 사람들한테 부탁하는데 오늘은 매표소 창구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60~70대들은 자주 디지털 기기를 안 쓰다 보니 다들 어려워하는 거 같다. 나도 20대 때는 서울에서 살았는데도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지능정보화기본법 제정,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등을 통해 모바일 앱 및 키오스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이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데다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지원 없이 의무만 부여됐다"며 반발이 나오고 있는 탓이다.
또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효율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지난해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명절 비대면 예매에 대한 지적에 "오프라인 창구를 축소한 것은 비대면 발권이 90% 정도여서 나름대로 효율화해 온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디지털포용법 공청회 과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명절 때마다 디지털 격차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은 효율성을 따지는 사회 변화의 양태에 있다"며 "편리한 방법만 찾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를 충족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디지털포용법이 제정되면 도움은 되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현재 식당이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장애인도 쓸 수 있는 키오스크를 설치하라고 하지만 모든 장애인을 고려한 키오스크는 상당히 기능이 고도화돼야 하기 때문에 영세한 가게는 사장이 직접 주문 받는 게 비용을 더 낮출 수 있어 개별 사안별로 디지털 격차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들을 일반 사람들과 경쟁시키면 안 된다"며 "노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비대면이 아닌 대면으로 예매를 할 수 있게끔 해주고, 좌석 할당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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