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관계 여고생 2명 끌어들여 제자 유괴·살해한 미남 체육선생
도박 빚에 중학생 이윤상 군 납치…5개월간 협박 전화 [사건속 오늘]
'무사히 보내면 관용' 대통령 담화…공개수사 후 검거, 전 국민 충격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980년 11월 13일 서울 마포의 모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이윤상 군(1967년 6월 11일생)이 오후 4시쯤 "누나 심부름을 간다"며 나간 뒤 저녁 시간을 넘겨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이곳저곳에 '우리 윤상이 못 봤냐'며 알아보던 중 그날 밤 8시 어떤 남성이 "윤상이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일본으로 밀항할 자금이 필요하다. 4000만 원을 마련하라. 경찰에 신고하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어 밤 12시까지 모두 4차례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
이 사건은 △ 대통령 특별 담화 △ 선생님이 제자를 유괴 △ 여제자와 불륜 △ 치정에 얽힌 범죄 △ 감독 선상의 교육자들 줄사퇴 등 범죄 소설에 등장할 모든 내용을 갖춘 대한민국 유괴 범죄 중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윤상 군의 아버지는 '지금 당장 그런 거액을 만들 수 없다. 2000만 원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아들만 무사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범인이 요구한 4000만 원은 당시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 1979년 말 입주를 시작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 분양가가 2700만 원(2024년 시세 25억 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밤을 꼬박 새운 가족들은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아가 '비공개로 수사해 줄 것'을 요구하며 신고했다.
당시는 계엄령(1979년 10월 26~1981년 1월 24)을 선포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국보위 시절.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그런 태생적 약점 때문에 민심을 잡기 위해 사회악 소탕을 전면에 내걸었기에 유괴 사건 발생에 경찰은 초긴장했다.
즉각 이윤상 군 집 전화에 녹음장치를 설치하고 집 부근에 형사대를 잠복 대기시켰다.
범인은 1980년 11월 13일부터 1981년 4월 10일까지 모두 62차례 협박 전화와 6차례 협박 편지를 보냈다.
62차례 협박 전화 중 처음 건 한 차례만 남자 목소리였으며 나머지 61번은 모두 여자가 걸었다.
협박 편지도 1, 2, 5번째 편지는 여성 필체였고 3, 4번째 편지는 남자 필체로 분석됐다.
경찰은 이러한 점을 볼 때 범인들이 여성을 포함해 3~4인조를 판단했다.
범인은 1980년 11월 16일 저녁 6시 40분 전화에선 "이분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아니면 난 죽어요"라는 윤상 군 목소리를 가족들에게 들려줬다.
훗날 윤상 군은 납치 이틀 뒤인 1980년 11월 15일 살해당했으며 범인이 살해 전 목소리를 녹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1980년 11월 17일 수원 우체국에서 윤상 군 부모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20일 저녁 7시까지 ○○제과점으로 돈을 들고나오라"고 요구했다.
윤상 군 누나가 돈가방을 들고 빵집으로 갔을 때 집으로 전화를 해 "마음이 바뀌었다. 남산 야외음악당으로 와라"고 했다.
○○제과 일대 골목, 길거리 요소요소에 형사들을 배치했던 경찰이 난감해하자 윤상 군의 아버지는 "야외 음악당 위치를 잘 모르겠다. 시간을 달라"고 했다. 뭔가를 눈치챈 듯 범인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11월 23일엔 "윤상이가 ○○책을 읽고 싶어 하니 마포우체국 공중전화 부스에 책을 올려놓아라"는 전화가 왔다. 가족들은 책을 가지고 갔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유괴 사건이 장기화하고 범인 연락이 뜸해지자 경찰은 1981년 2월 26일 공개수사로 전환, 1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해 1월 24일 계엄령을 해제하고 2월 25일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돼 3월 3일 대통령 취임 및 제5공화국 출범 선포를 앞두고 있던 전두환은 2월 27일 '이윤상 군 유괴 사건'과 관련해 특별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문의 주요 내용은 △ 이윤상 군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수사기관은 총력을 다할 것 △ 무사히 돌려보내면 이번만은 관대히 조치하겠다 △ 앞으로 이러한 유괴 사건이 발생할 경우 법이 정한 최고의 형으로 엄벌하겠다는 것이다.
유괴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무사히 돌려 보낼 경우 최대한 관용을 베풀겠다'고 밝힌 건 1979년 4월 1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 정효주 양 납치 사건 때와 1981년 2월 27일 전두환이 이윤상 군 납치 사건 때 등 2번 있었다.
이밖에 몇몇 굵직한 유괴 사건 때 정부 차원의 조속한 해결지시를 한 사례는 이따금 있었다.
경찰은 6통의 협박 편지에 남겨진 지문을 이용해 범인 찾기에 나섰다.
1년여 가까이 경찰은 무려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지문과 편지 속 지문을 대조하는 길고도 고단한 작업을 했지만 허탕을 쳤다.
그 이유는 범인이 붙잡히고 난 뒤에야 밝혀졌다.
바로 편지를 보낸 이가 주민등록 발급 대상(만 17세)이 아닌 미성년자였기 때문.
1년 가까이 범인 윤곽조차 잡지 못하던 경찰은 1981년 11월 초 윤상 군 어머니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면수사에서 "아들이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지 말고 나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라는 말에 따라 체육교사 주영형(1953년생) 주변을 샅샅이 파고들었다.
그 결과 학교 선생님, 학부모들 사이에 나돌던 '주영형 체육선생님 인기가 보통 아니다, 여중학교 때 엄청났다더라'는 소문에 주목했다.
앞서 경찰은 윤상 군이 다니던 학교 모든 교직원을 대상으로 알리바이를 캤고 당연히 주영형도 그 대상이었지만 알리바이를 말한 데다 당시만 해도 '설마 선생님'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따라 의심을 거둬들인 바 있었다.
탐문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그가 ○○여중시절 여학생을 성폭행해 문제가 된 것만 9건에 이른다(부적절한 관계는 20명이 넘었다는 말이 파다했음)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경찰은 일단 주영형을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연행, 압박을 가한 끝에 1981년 11월 29일 "도박 빚 1000만 원을 갚기 위해 윤상이를 유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주영형은 가정환경 조사서에 '가정 경제 형편 상(上)'으로 나타난 이윤상 군을 주목했다.
이를 위해 여중 재학시절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제자 A(1980년 당시 여고1년생), B(여고 2년생)를 끌어들였다.
주영형은 A를 협박 전화, 금품요구 편지, 시신 유기 등에 동원했고 B에겐 금품요구 편지 작성 및 편지 보내는 일을 시켰다.
편지에 남겨진 지문 주인공을 찾지 못한 것도 A가 주민등록증 발급 나이가 안 돼 지문 역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영형은 이윤상 군을 택시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간 뒤 손발을 묶었다.
윤상 군이 소리쳐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주영형은 테이프로 입을 봉한 뒤 이불을 뒤집어씌워 눕혀 놓았다.
법정에서 주영형은 "11월 15일 아침 7시 30분 출근을 앞두고 자수할까 싶었지만 그냥 학교로 가버렸다. 오후 2시쯤 돌아와 보니 죽어있었다"고 한 말을 보면 윤상 군은 11월 15일 오전 7시 30분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 처리를 고민하던 주영형은 11월 30일 여행용 가방에 윤상 군 시신을 담은 뒤 A와 함께 가정집 옥상용 물탱크로 흔히 쓰던 PVC 통에 집어넣었다. 이어 택시를 불러 경기도 가평 북한강 변으로 가 암매장했다.
주영형은 명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 ROTC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 서울 시내 학교로 발령받은 후 교육대학원에 입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당시로선 큰 키인 178㎝의 탄탄한 체구를 자랑하는 주영형은 특기는 수영으로 그가 수영 특강에 나설 때면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여학생은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주영형이 건드린 여학생 제자가 20명이 넘었다고 당시 그를 알고 있던 이들이 증언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주영형은 1982년 11월 23일 대법원에 의해 사형을, A는 단기 3년 장기 5년을 확정받았다. B는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자 항소를 포기했다.
주영형은 사형 확정 판결 7개월 16일 만인 1983년 7월 9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편 주영형이 근무했던 ○○여중, ○○남자중학교 간부 선생님들은 '지도를 제대로 못 했다'며 줄 문책을 당하고 몇몇은 교단을 떠나는 등 교육계는 한동한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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