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두고 결혼? 누구 좋으라고" 짝사랑 여선생 살해한 제자

집착, 성폭행 시도까지…그때마다 '제자인데' 용서[사건속 오늘]
친구가 단념시키려 "선생님 결혼" 거짓말…美유학 중 귀국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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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징역형은 죄를 범한 이들을 처벌하는 법적 조처로 크게 무기징역과 유기징역으로 나눈다.

2010년 4월 14일까지 유기징역 상한선은 15년, 가중처벌 할 경우 25년이었지만 그해 4월 15일 형법 개정에 따라 유기 징역형 상한선이 높아졌다.

개정된 형법 제42조(징역 또는 금고는 무기 또는 유기로 하고 유기는 1개월 이상 30년 이하로 한다)에 따르면 유기징역 상한선은 징역 30년이다. 다만 가중처벌의 경우 50년까지 가능하다.

2014년 9월 25일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2심 도중 항소를 취하한 A 씨(1992년생)에 대해 징역 35년형을 확정했다.

이는 당시로선 우리나라 사법사상 최장기형이었다.

앞서 A는 고교 시절 진학지도 교사였던 B 씨(1979년생)를 살해한 혐의로 2014년 7월 29일 1심에서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고교 2년 때 진학지도 여선생 흠모…집착이 스토킹, 협박으로 이어져

A는 2009년 3월, 충북 모 고교 2학년 때 진학지도 교사 B 씨를 본 순간 '내 사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진로를 상담한다며 거의 매일 B 교사를 찾았고 집으로 찾아가기까지 했다.

B 교사의 친절함을 애정으로 착각한 A는 나름의 러브레터로 자신의 마음을 표시했다.

이러한 A에 B 교사는 "너는 학생, 나는 선생이다"며 선을 그었지만 A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졌다.

흠모가 짝사랑, 짝사랑이 집착, 집착이 스토킹, 스토킹이 협박으로 이어졌다.

3학년으로 올라가서는 B 교사에게 '우린 사랑하는 관계다'며 억지를 부렸고 전화, 이메일로 B 교사를 괴롭혔다.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우린 연인 사이다'라는 이메일을 뿌렸다.

'단호해져야겠다'고 생각한 B 교사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A에게 멈출 것을 요구했다. 그 순간 A는 '배신감이 들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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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직후 성폭행 시도…제자 장래 생각한 선생님 112신고 않고 타일러

2011년 1월 고교를 졸업한 A는 '선생님을 강제로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겠다'고 결심, 그해 2월 8일 B 교사 집으로 찾아가 둔기로 위협 성폭행을 시도했다.

B 교사가 저항하면서 '이러면 안 된다' '앞으로 선생님을 안 보겠다는 것이냐'고 어르고 달래자 A는 행동을 멈췄다.

성폭행 위기에서 벗어난 B 교사는 제자의 장래를 생각해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A를 타일러 병원 치료를 권했다.

정신과 3개월 입원 치료, 미국 유학길 올라 끝나는가 싶었던 집착…그러나

B 교사의 애원에 A는 2011년 2월 16일 스스로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아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어 미뤄뒀던 공부에 집중, 미국의 모 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해 2012년 5월 유학길에 올랐다.

이 소식에 B 교사는 제자가 이제 마음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미국에 간 A는 B 교사의 SNS에 '행복하시나' '우린 헤어질 수 없다'는 협박성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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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념시키려 친구가 한 '선생님이 결혼하신단다' 거짓말에 격분…휴학 후 한국행

A의 유별난 짝사랑은 동창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친구 중 한명인 C 씨는 '이러다 선생님과 친구 모두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C는 2013년 7월 미국에 있는 A에게 'B 선생님이 결혼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제는 단념할 것을 권했다.

C의 말을 접한 A는 사랑을 단념하기는커녕 '담판을 짓겠다'며 학교를 휴학, 한국으로 달려왔다.

2013년 가을 내내 A는 어학원으로 자리를 옮긴 B 교사를 찾아가 울고불고 매달렸다.

지친 B 교사는 '이제는 못 참겠다,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잔인하게 살해 후 심신미약 주장…法 "해부학 지식까지 살인에 이용"

2013년 12월 18일 어학원 주변에 숨어 B 교사의 퇴근을 기다리던 A는 B 교사가 건물을 나서자 곧장 달려가 흉기를 휘둘러 그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재판에 넘겨진 A에 대해 변호인은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하면서 형량을 줄이려 애썼다.

하지만 2014년 7월 29일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는 △살해하겠다는 이메일을 400여차례 보낸 점을 볼 때 계획살인이 분명한 점 △ 간호학과에서 배운 해부학 지식을 살인에 이용한 점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징역 35년형과 함께 위치추적 장치 20년 부착, 성폭력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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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제자에게 '성경책' 전달한 선생님 어머니…직후 항소 포기

A는 지나치게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2014년 9월 16일 항소심 1차공판 때 A는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냐"는 재판장 물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며 마치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답했다.

이 말을 들은 B 교사 어머니는 발언권을 얻어 "2년 전 딸이 성폭행당할 뻔했을 때 '용서하라'고 했던 것이 너무 후회된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죗값을 달게 받았으면 한다"고 엄벌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재판장에게 "A에게 성경책을 전하고 싶다"고 허락을 구했다. 재판장은 "규정상 법정에서 직접 물품을 줄 수는 없다. 변호인이 A를 접견할 때 성경책을 전달해 달라"며 모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A는 B 교사 어머니의 말에 감동하였는지 그 직후 항소를 취하하고 1심 선고를 받아들였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