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살려 줘" 도망친 아내, 장인 앞 일본도로 살해한 남편

이혼 소송 '유리한 녹취' 얻기 위해 아내 유인[사건속 오늘]
친정 아버지 품에 안겨 죽어가면서 "우리 딸들 어떡해" 걱정

장인 앞에서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 모씨(49)가 2019년 9월 5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A씨와 피해자는 별거하며 이혼소송을 벌여왔으며, 부친과 함께 A씨의 집을 찾은 피해자에게 일본도(장검)를 휘둘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1.9.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1년 9월 3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40대 여성 A 씨는 남편 장 모 씨(당시 49세)가 휘두른 1m가 넘는 일본도에 찔리자 "아빠 살려줘"라며 다급히 친정아버지를 찾았다.

장 씨와 이혼 소송 중인 딸이 옷가지를 챙기는 것을 도와주려고 왔던 친정아버지 B 씨는 복부를 움켜쥐고 쓰러진 딸을, 고령임에도 번쩍 안아 들고 황급히 현장을 벗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이어 자신의 품에 안겨 숨져가는 금쪽같은 딸의 이름을 부르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라"고 눈물을 쏟아냈다.

A 씨는 "아빠, 우리 딸들 어떡해"라며 남은 자식 걱정을 하면서 숨을 거뒀다.

◇ 의처증 남편…위치 추적 앱, 녹음기 설치해 감시, 장검으로 위협, 돈벌이까지 시켜

2004년 결혼, 두 딸을 둔 A 씨는 남편의 의처증으로 힘들어했다.

남편이 툭하면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며 의심했고, 아내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을 깔아 놓는가 하면 집 구석구석에 녹음기까지 설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안심이 안 된다'며 돈 벌 생각보다는 아내 감시에 더 열을 올렸다.

◇ 돈 벌어 오라, 내몰고선 '돈 모으면 집 나간다'며 아내 번 돈 써버려

장 씨는 딸들이 초등학교에 가자 '시간이 나면 한눈팔 것이 분명하기에 돈을 벌어 오라'며 내몰았다.

그러면서 '돈을 모으면 가출할 우려가 있다'며 A 씨가 벌어온 돈을 다 써버렸다.

수시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장 씨는 2016년부터 의처증이 더욱 심해져 2002년 업무상 선물 받은 소장용 일본도를 수시로 꺼내 아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장인 앞에서 아내를 일본도(장검)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 모 씨(49)가 2021년 9월 10일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1.9.10/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 남편 위협에 "아빠 나 좀 살려 줘" 전화…피해자 딸 "아빠가 엄마 죽일 것 같다"

갈수록 남편의 폭력 정도가 심해지나 A 씨는 친정아버지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나 좀 살려달라"며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B 씨는 황급히 딸의 집으로 가 사위를 달래고 타일러 봤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A 씨의 큰딸이 2021년 4월 "이대로 있으면 아빠가 엄마 죽일 것 같다"며 애원하자 A 씨는 딸들과 함께 친정으로 피신, 그해 5월 이혼소송을 냈다.

아울러 위자료 청구 소송 및 접근금지 처분까지 신청했다.

◇ 남편 "아이들 옷 가져가라' 연락…이혼소송, 유리한 증거위해 녹음기 숨겨

장 씨는 파탄 원인 제공자임이 명백해지는 등 이혼 소송에서 불리해지자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려 꾀를 냈다.

녹음기를 옷 안에 숨겨 놓은 뒤 아내를 불러 '폭행은 사실무근'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점 등을 말하게 유도할 작정으로 A 씨에게 "아이들 옷을 가져가라"고 연락했다.

A 씨는 혹시나 싶어 친정아버지 B 씨와 함께 9월 3일 장 씨의 빌라에 도착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친정아버지 "느낌이 안 좋아 현관문 열어 놓았다"…남편, 아내에게 유도 질문했지만

딸의 부탁에 따라 사위 집으로 온 B 씨는 느낌이 이상해 현관문을 열어 둔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장 씨는 아내에게 다짜고짜 "이혼 소송을 취하하라" "네가 할퀴려고 달려들어서 밀었더니 목을 졸랐다고 왜 거짓말했냐"고 따졌다.

이에 A 씨는 "왜 내가 취하해야 하냐" "그때 목을 졸랐잖아"라고 받아쳤다.

남편이 언성을 높이면서 욕설하자 A 씨는 B 씨에게 "아빠, 촬영 좀…"이라고 부탁했다.

이에 격분한 장 씨는 옷장 속에 보관 중이던 일본도를 꺼내 들었다.

◇ "아빠 칼, 살려 줘"…장인 "장 서방 왜 그러냐" 만류했지만

놀란 A 씨는 "아빠 칼, 살려 줘"라고 외쳤고 B 씨는 "장 서방 왜 그러냐"고 제지했지만 장 씨는 이를 뿌리치고 일본도를 휘둘렀다.

B 씨는 이 순간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휙 소리가 나더라. 부엌으로 피한 딸이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싱크대에) 기대고 있자 여러 번 순식간에 찔러버렸다"고 했다.

B 씨는 피를 흘리고 쓰러진 딸을 안고 서둘러 빌라 밖으로 피신했고 이 장면이 빌라 앞 CCTV에 그대로 찍혔다.

ⓒ News1 DB

◇ 마직막까지 어린 딸 걱정한 피해자…남편, "장인 그때 뜯어말렸어야죠" 원망

B 씨는 딸을 살리기 위해 고함과 몸부림을 쳤지만 상처가 심한 것을 보고 "할 말 있으면 다하라"고 했다.

그러자 A 씨는 "아빠 우리 딸들 어떡해"라며 남은 자식 걱정을 했다.

B 씨와 빌라 주민의 신고를 받고 119가 출동했지만 이미 A 씨는 심정지 상태였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장 씨는 다음날 B 씨와 통화하면서 "아버님이 나를 좀 뜯어말리지 그러셨냐"며 원망하고 처남(A 씨 남동생)에겐 "뭐가 뭔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까지 했다.

◇ 검찰 무기징역 구형…1~3심 "감정조절 어려움 감안했다"며 징역 20년형

살인 및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 된 장 씨에 대해 검찰은 2022년 1월 26일 "범행을 직접 목격한 피해자 아버지는 슬픔을 안고 평생 살아야 하는 등 극악한 범죄"라며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김동현)는 2월 16일 "어린 딸들이 있고, 이 사건 범행 현장에 피해자의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다"면서도 △ 어릴 때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점 △ 그에 따라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점 △ 평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점 등을 감안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이에 유족들과 검찰은 형이 너무 약하다며 항소했지만 2022년 9월 20일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12-2부(부장판사 진현민·김형진·김길량)는 1심 선고를 유지했다.

장 씨는 2022년 12월 29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에 의해 징역 20년형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