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라지한 아내 토막 살해 뒤 산책한 악마…"저놈 죽여라" 처형

수입 없이 빈둥빈둥, 동거 끝내자 하자 범행[사건 속 오늘]
사형 전까지 재심청구…"자식들엔 살인마 아니라고 해달라"

ⓒ News1 DB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세상에 이런 끔찍한 범죄가 있을 수 있나."

1975년 6월 20일 발생한 이른바 '이팔국 아내 살인사건' 당시 사건을 맡은 동대문경찰서장이 기자회견 때 기자들에게 내뱉은 첫 마디다.

49년 전, 경찰서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언론에는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짓'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부부싸움 끝 살인,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완전히' 없애버린 남성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오원춘, 고유정 등 모방범죄를 낳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변태성욕자' 이팔국, 아내 이혼요구에 목 졸라 살해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이팔국(당시 47)은 신장 180㎝가 넘는 거구로, 일찍부터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자랐다. 1958년 한 여성과 결혼해 4남매를 뒀으나, 11년 뒤 아내가 사망하면서 이팔국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포악한 성격이었던 그는 1972년 가정부를 성폭행해 처벌받았고, 평소 사기 행각을 자주 벌여 일정한 직업 없이 허가 업무를 알선해주는 등 변변치 않게 살았다. 주변인들이 이팔국을 '변태성욕자'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팔국은 1973년 다방과 양장점을 경영하던 이숙자(43)를 만났다. 그는 다방을 들락거리며 이숙자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사업 자금으로 쓰라고 100만 원을 쥐어주면서 환심을 산 끝에 같은 해 9월 동거를 시작했다.

실직 상태였던 이팔국은 이숙자에게 빈대처럼 빌붙었고, 심지어 전처 소생인 4남매의 육아와 살림마저 떠넘겼다.

남편 노릇도, 아빠 노릇도 뭐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빈둥대던 이팔국의 모습에 참다못한 이숙자는 1975년 6월 10일 "6월 19일까지만 동거하자"며 별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이숙자의 재산을 노린 이팔국은 6월 13일날 몰래 도장을 위조해 혼인신고한 뒤, 별거를 약속한 당일 이를 빌미로 "헤어질 수 없다. 법적인 배우자니까 다른 사람과 사귀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숙자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의 다툼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결국 이팔국은 6월 20일 새벽 1시, 홧김에 아내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이팔국의 손등에는 저항하던 이숙자가 할퀸 상처가 남았다.

(채널A 갈무리)

◇5시간 동안 시신 훼손…시신 유기 후 산책 '소름'

이팔국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무려 5시간에 걸쳐 아내 시체를 훼손했다. 피부 조직을 벗겨내고 살점과 뼈를 토막 내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등 시체 하나를 완전히 분해한 것이다.

날이 밝자 그는 온 집안에 소독약을 뿌려 탄내와 피 냄새를 지우고, 욕실은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청소했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누가 물어보면 엄마는 20일 새벽에 집 나가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고 말해라"라며 입막음을 시켰다.

이어 연탄재 섞은 뼛가루를 비닐봉지에 담아 시멘트 포대로 감싼 뒤 집에서 1㎜가량 떨어진 페인트 가게 옆 쓰레기 하역장에 갖다버렸다. 그다음 날 새벽에는 김치와 섞은 근육 조각들이 담긴 항아리를 들고 모 대학 인근 담벼락에 유기했다.

소지품까지 모두 소각한 이팔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책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 '이혼의 충격을 받은 아내가 실종됐다'는 각본을 짜고 완전 범죄를 꿈꿨다.

그러나 이숙자의 딸 김 모 양(23)이 실종신고를 하면서 이팔국의 잔혹한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완벽 범죄 꿈꿨으나"집에서 역겨운 냄새 났다"

김 양은 사흘이 넘도록 다방과 양장점에 나오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는 엄마가 걱정돼 6월 22일 오전 11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당시 김 양은 성격이 포악하고 어머니에게 주먹질을 일삼는 의붓아버지 이팔국이 수상하다고 경찰에 귀띔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될 무렵,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골목에서 쓰레기 봉투를 수거하던 중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를 발견했다는 환경미화원의 신고가 들어왔다.

앞서 이팔국이 이숙자의 시신을 유기했던 6월 20일에도 '멀끔한 차림의 남성이 쓰레기차를 한참 쳐다본 뒤 잘 포장된 물체를 버렸다'는 신고를 받았던 경찰은 이를 수상하게 여겨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그 결과 환경미화원이 발견한 것은 '톱으로 훼손된 사람의 뼈'로 밝혀졌다.

경찰은 실종 신고 6일째 되는 날, 이팔국의 4남매를 소환해 대질심문을 벌였다. 아이들은 "20일 새벽에 엄마랑 아빠랑 싸우다가 조용해졌다. 근데 아침에 일어나니 집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아빠가 '벌레가 끓어서 소독약 쳤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한 아이는 "뭔가 태운 냄새와 정육점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서 났다"고 말했다.

이후 토막당한 뼈가 이숙자의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은 사건 발생 10일 만인 6월 28일 이팔국을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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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앉아 있다" 경찰도 벌벌…심신 미약 주장 끝 '사형'

경찰의 추궁에 결국 이팔국은 자백했다. 일주일 뒤 진행된 현장 검증에서는 통행 금지가 있던 시절임에도 주민 50여 명이 몰려와 "저놈 죽여라"라고 분노했지만, 이팔국은 아무런 미동 없이 범행 과정을 상세하게 재연해 치를 떨게 했다고 한다.

특히 사체 처리 과정을 받아 적던 담당 형사는 펜을 던지고 구토하는 등 몸서리쳤다는 후문이다. 이 형사는 "내 옆에 악마가 앉아 있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너무 역겨워서 줄담배를 피웠고 입술을 깨물어서 상처가 났다"고 토로했다.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8부(재판장 심훈종)는 이팔국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우발적이었지만, 그 뒷과정에서 사체를 훼손하는 등 지극히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인명을 천시해 피고인의 행위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이팔국 측은 기억상실 등 심실 상실 상태, 6·25 부상으로 인한 정신착란증 등을 주장하며 항소 및 상고했으나 기각당했다.

1976년 대법원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자, 이팔국은 사형 전날까지 재심청구서를 제출했으며 "내 자식들에게는 아버지가 살인마가 아님을 전달해달라"고 말하며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사건 발생 2년 6개월 만인 1977년 11월 이팔국은 처형됐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