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골수채취' 엇갈린 판결, 의사만 가능?[세상을 바꿀 법정]

④ 대법원 선고 앞둔 전문간호사 골막천자 사건
법조계 "의료 공백 등 상황 고려할 때 파기환송 가능성 높아"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인 동시에 나침반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정에서 나침반의 방향을 돌려놓을 사건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법정'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대체됐는지를 살펴본 데 이어 '세상을 바꿀 법정' 시리즈를 통해 나침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짚어봤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관련 시범사업 교육을 받고 있다. 2024.4.25/뉴스1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전문간호사 골수 채취의 의료법 위반 여부를 두고 1심과 2심 재판부가 엇갈린 판단을 내놓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그간 법적으로 모호했던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기준이 되는 법적 판단이 나올 수 있어 의료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파기환송을 선고할 경우 전문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법으로 인정하는 의미도 있어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간호법'의 법적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1심 "무면허 의료행로만 볼 수 없어" vs 2심 "의사만 할 수 있어"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들을 옮기고 있다.. 2024.3.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2018년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가 아산사회복지재단(서울아산병원) 소속 종양 전문간호사의 골막천자 시행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전문간호사는 부족한 의사 인력을 대신해 수술 및 검사 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보조 등 의사 업무 일부를 맡는다. 골막천자는 혈액·종양성 질환 진단을 위해 골반뼈의 겉면(골막)을 뚫어 골수를 채취하는 행위다.

앞서 이 사건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1심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 판례 미비, 규율 공백 등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의사가 직접 의료행위를 하는 것과 종양 전문 자격을 가진 간호사가 의사 지시나 위임 아래 이 사건 의료행위를 하는 것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 관련 법령에서 골막천자를 의사만 직접 하도록 명시한 내용은 없으며 이 사건 이전 대법원 및 하급심 판례도 없는 상황"이라며 "국가가 모호한 규율 상태를 장기간 방치하거나 법에 따른 행정규칙 규율을 미뤄놓은 공백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개인에게 돌리는 건 온당치 않다"고 판시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골막천자를 의사가 직접 해야 할 의료행위라고 보고 1심과 달리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종양전문간호사 자격이 있는 간호사는 종양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았을 뿐, 의사가 해야 할 의료행위까지 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의사의 입회 여부를 떠나 이 사건 의료행위를 간호사가 직접 수행한다면 이는 진료의 보조가 아니라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면서 "단순 채혈과 동일한 위험성이 있는 의료행위로 단정할 수 없고,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 "간호사 법적 보호 신호탄 될 것" vs "의료 질 저하에 사법부도 일조"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전국 간호사 간호법안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 발언하고 있다.. 2024.5.2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올해 나올 대법원의 판결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나타나면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 확대가 정부와 국회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각 병원이 조정위원회를 통해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 일부 부여할 수 있도록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발표했다.

야당은 지난해 11월 대통령 재의요구권으로 좌초된 간호법을 재발의했고, 여당 역시 지난 3월 '간호사법'을 발의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법적 보호 장치를 내놓았다. 여야 모두 22대 국회에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권리 보호 관련 법안 처리를 천명했다.

간호단체는 대법원에서 해당 사건을 무죄로 판단할 경우 간호사 업무 명확화 및 법적 보호의 근간이 되는 간호법 제정에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2년 전 법을 만들었지만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라면서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가 나오면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간호사 업무 명확화와 확대 등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고 간호사의 법적 보호 필요성의 또 다른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사단체는 우리나라 의료 질 저하에 사법부도 일조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병의협 관계자는 "의사가 해야 할 골막천자를 간호사가 한 것은 간호의 범위를 벗어나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에 이어 사법부마저 그같이 판단한다면 의료체계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저비용으로 수익을 올려온 대형 병원의 승리로 끝날 것이고 대한민국 의료 질 저하에 모두 일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법조계 "파기환송 가능성 꽤 높아…정부·국회 간호사 논의에 힘 싣는 의미"

법조계에선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부·국회의 간호법 논의, 의료공백 상태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 일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란 분석이다.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의료계와 사회적 인식 변화와 맞물려 대법원 판례가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전적으로 유죄를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과거 정맥주사는 의사가 해야 한다는 판례가 형성됐지만 점차 간호사들도 할 수 있는 등 판례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한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는 "일 잘하는 전문간호사가 골막천자를 시행할 때 1년 차 전공의가 감독하면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사와 병원이 시켜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 일부를 부담하는 것을 고발하는 건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상황에서 파기환송 가능성도 꽤 보인다"라면서 "정부와 국회의 간호사 관련 논의에 사법부가 공감하는 것이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