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성폭행한 전과 3범…'너 때문에 옥살이' 출소 후 피의 복수극
이사 집 찾아 사전답사 2차례…피해자 없자 모친 살해[사건속 오늘]
명문대 오빠· 엄마 친구까지…복수 벼르던 박형택, 구치소서 사망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오늘 이야기는 비뚤어진 욕망,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그 잘못을 남 탓으로 넘겨 한 가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박형택(1960년생)에 관한 것이다.
◇ 옥살이 보복하겠다며 4년 전 성폭행한 여고생 집 찾아
34년 전 오늘 1990년 6월 8일 많은 사람은 다음 날 새벽에 중계될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전(아르헨티나-카메룬) 경기 결과를 놓고 심심풀이로 내기를 걸고 있었다.
그날 흉기를 가슴에 품고 서울 동작구 노량진 2동 A 양(1970년생)의 집에 찾아간 박형택은 집안을 살폈으나 A 양은 보이지 않고 거실 마루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A 양 어머니 B 씨(당시 56세 보험대리점 대표)를 봤다.
B 씨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박형택은 다짜고짜 흉기를 꺼내 그 자리에서 B 씨를 숨지게 했다.
비명에 놀라 옆방에서 나온 B 씨의 동료 C 씨(61세 보험외판원)와 A 양의 오빠로 명문대에 다니던 D 군(당시 25세)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태에 빠뜨렸다.
박형택은 아래채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뛰어나오자 흉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 여고생 성폭행, 합의 안 해줘 옥살이하게 만들었다
박형택은 1986년 9월 24일 당시 여고 1년생이던 A 양을 위협, 경기 부천시 역곡동 야산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B 씨 등 가족들은 A 양이 성폭행으로 임신하자 경찰에 박형택을 고소했다.
당시엔 성폭행이라도 합의를 볼 경우 실형을 면할 수도 있어 박형택은 합의를 종용했지만 A 양 가족들은 '용서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전에 이미 강간 전과 2범이던 박형택은 A 양 사건까지 더해져 징역 2년 9개월 형을 선고받고 1988년 12월 23일 가석방 형태로 조기 출소했다.
옥살이할 때 박형택은 '합의만 해 줬어도 이 모양은 안됐다'며 말도 안 되는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 학교까지 찾아가 이사 사실 알아내…두차례 집 옮겼지만 끝내 주소 확인
'만나면 A 양을 그냥 두지 않겠다'며 보복을 다짐한 박형택은 경기 안양시 A 양 집을 찾았으나 '이사 가고 없다'는 말을 듣자 A 양이 다녔던 고등학교를 찾아가 서울 독산동으로 이사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독산동을 찾은 박형택은 A 양 가족이 노량진 2동으로 다시 집을 옮긴 사실까지 알아낸 뒤 1990년 3월 말, 4월 초 두차례에 걸쳐 A 양 집을 찾아가 주변을 살피고 도주로까지 확보해 두었다.
◇ 범행 수법 잔혹, 금품 그대로…원한에 의한 범행, 박형택 행적 추적해 검거
노량진 경찰서는 B 씨 양쪽 가슴에 깊숙한 자상이 있는 등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집에서 없어진 금품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원한에 의한 범행으로 보고 관련 정보 수집에 나섰다.
그 결과 A 씨가 3년 8개월 전 성폭행당한 사실을 파악해, 부천경찰서와 공조 수사를 펼치는 한편 서울과 경기도 등을 대상으로 박형택 소재 파악에 나섰다.
보름여 동안 박형택 뒤를 쫓은 경찰은 6월 25일, 서울 모처 독서실에 박형택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 강력반을 투입해 격투 끝에 검거했다.
◇ A 양 죽이지 못해 억울…사형만 아니면 출소 후 A 양, 형사 모두 죽이겠다
잡혀 온 박형택을 조사한 경찰은 그가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마련하는 등 보복 준비를 철저히 해 온 사실을 찾아냈다.
구속돼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박형택은 동료 수감자들에게 'A 양을 죽이지 못해 원통하다' '사형만 면한다면 출소 후 A 양은 물론이고 복수를 좌절시킨 형사까지 모두 죽이고야 말겠다'는 등의 분노에 찬 발언을 쏟아냈다.
날이 갈수록 적개심에 불타오른 박형택을 동료 수감자들도 무서워할 정도였다.
'빨리 나가 복수해야 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던 박형택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1심 재판 중이던 1990년 12월 18일 서울 구치소에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후 이 사건은 '노량진 살인사건'으로 불리게 됐으며 여고생을 위협해 성폭행하고도 징역 2년 9개월 형에 그쳤던, 합의할 경우 풀려날 수도 있었던 당시 사법 체계를 돌아보게 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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